글자 없이도 시를 쓸 수 있을까. 시가 가진 운율과 리듬, 수많은 비유법을 표현할 수 있을까. 불가능해 보이는 예술적 도전을 한평생 지속해온 작가가 있다. ‘단색화의 선구자’로 세상에 알려진 작가 김기린(본명 김정환·사진)이다.
김기린은 광활한 캔버스에 작고 오돌토돌한 계란형의 점을 반복해 찍었다. 두서없이 점을 찍은 것은 아니다. 우선 큰 붓으로 캔버스 전체에 물감을 여러 겹 칠했다. 그다음 중간 크기의 붓을 들어 굵은 선으로 공간을 나눴다. 작은 붓으로 또 다른 공간을 구분한 뒤에야 비로소 점을 찍었다.
한 개의 점 위엔 30겹의 물감이 쌓인다. 한 곳에 30번의 점을 찍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짧게는 1년, 오래는 3년 이상이 걸리는 이유다. 점을 겹겹이 쌓을 때의 시간과 온도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물감을 써도 그 밀도와 농도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이런 작업을 통해 시의 운율처럼 캔버스 위에 리듬감을 수놓을 수 있었다. 2012년 그는 “찍는 순간마다 점이 다 다르다. 그게 내 그림의 생명력이다” “점을 찍는 순간만큼은 내 한계를 넘어선다.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나는 제일 충만한 사람이다”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김기린의 개인전 ‘무언의 영역’에서는 단색화 거장이 걸어온 생애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2021년 작고한 이후 마련된 첫 번째 개인전이다.
일제강점기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김기린은 전쟁 직전 서울로 내려와 고교 시절을 보냈다. 용산고등학교에서 만난 프랑스어 교사의 영향으로 대학에서 불어불문학과를 전공하고 프랑스행 비행기를 탔다. 프랑스어로 시를 쓰는 한국인 시인이 되려고 했으나 불가능했다. 대신 그림이 눈에 띄었다. 미술사와 미술 수업을 청강하며 붓을 들었다.
1965년, 파리에서 새내기 작가 김기린의 첫 개인전이 열렸다. 당시에는 사물을 명확히 그리는 구상화를 그렸다. 추상화의 세계로 뛰어든 것은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 교수 로저 카스텔을 스승으로 맞으면서다. 1972년 열린 파리 개인전에 나온 검은 바탕에 검은 직사각형을 그려놓은 1970년작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연작은 세상의 큰 관심을 받았다. 오늘날 ‘단색화’라고 불리는 작품이 됐다.
이번 전시는 1990년대 ‘안과 밖’ 연작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한지 같은 종이에 유화로 점을 찍어낸 시리즈다. 그가 긴 프랑스 생활을 끝내고 서울 효자동에 작업실을 차린 뒤 그린 그림들이다. 작고한 이후 그의 작업실을 정리하다가 나온 작품이다. 그가 한지를 택한 이유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그리워하던 것이 고향 문 창호지에 빛이 비치는 장면이었다.
김기린은 클래식 애호가였다. 작업하는 내내 좋아하는 클래식 노래를 크게 틀어놨다. 그는 멘델스존 곡에서는 노란색이, 차이콥스키 음악에서는 회색이 보인다고 했다. 그의 작품을 지배하는 색 중 하나인 붉은색의 영감은 그가 제일 사랑한 브람스와 라흐마니노프의 곡이 담긴 LP 커버에서 나왔다. 그의 곁에는 항상 색과 글, 노래가 있었던 것이다. 전시는 오는 7월 14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고(故) 김기린 화백에 대한 보다 상세한 기사는 오는 27일 발간되는 ‘아르떼’ 매거진 7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