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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우의 지식재산 통찰] 산업스파이 막을 당근과 채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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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핵심 인력 수백 명이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로 이직하면서 한국 반도체 경쟁력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고대역폭메모리(HBM) 후발주자인 마이크론이 국내 기업보다 성능이 앞선 HBM 개발에 연이어 성공했다. 마이크론은 미국 정부의 지원까지 받아 인공지능(AI) 반도체 생산설비를 증설하고 있어 한국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그간 우리 핵심 기술의 주된 유출국은 중국이었다. 차세대 D램 공정 관련 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국내에서 체포된 SK하이닉스 중국 법인 현지 직원에 대한 재판 보도가 최근 있었다. 그런데 마이크론 사례에서 보듯 핵심 기술 정보나 인력이 미국, 대만, 일본 등 우방국으로도 유출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기술 패권을 둘러싼 경제 안보에 있어서는 우방과 비(非)우방의 경계가 모호해진 셈이다.

최근 주요국은 산업스파이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법 제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영국, 대만, 중국 등은 자국의 핵심기술 정보를 유출하는 행위를 ‘간첩죄’ 내지는 ‘국가안보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추세다. 대만은 2022년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경제산업 분야 기술 유출을 간첩 행위로 규정했다. 영국도 지난해 국가안보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적인가, 아닌가’라는 이분법을 넘어 국내외에서 이뤄진 스파이 행위를 범죄로 새롭게 규정했다. 첩보를 위해 드론을 운용하거나 전자적으로 민감한 장소에 접근하는 행위, 산업기밀 유출, 국가의 안전과 이익을 해치고 외국정보기관을 돕는 행위 등이 처벌 대상이고 형량은 최대 종신형이다.

한국에서도 주요국의 간첩법처럼 별도 법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행 형법상 간첩죄는 문제가 되는 국가 기밀 유출 대상을 ‘적국’으로 한정한다. 지금과 같이 적국과 동맹국의 경계가 달라진 경제 안보 환경에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대상을 적국이 아니라 ‘외국’으로 확대하자는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다. 그런데 북한과 대치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간첩이라는 용어에 우리 국민이 느끼는 특수한 의미가 있고, 기술자나 연구자를 잠재적 간첩으로 보게 된다는 반발도 있다. 자국 이익을 우선하고 기술 패권 경쟁이 장기화하는 시점에서 국가 플래그십(flagship)을 수호할 강력하고도 포괄적인 스파이법의 제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기술 유출은 산업스파이가 저지르는 경우도 있지만 인력의 자발적인 이직에 따라 발생하기도 한다. 수백 명의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채찍만 휘두를 수 없다. 경제적 인센티브와 경력관리를 통해 핵심 인재를 머물게 할 ‘당근’도 필요하다. 핵심 인력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재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국가가 별도로 관리하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직무발명보상제도가 있다. 직무발명은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한 발명인데, ‘발명진흥법’은 발명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 직무발명보상은 회사의 기술개발 성과와 핵심 인력을 관리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제도지만 이 취지를 충분히 반영해 운영하는 곳은 많지 않다. 보상금 몇 푼 아끼려다가 숙련된 핵심 기술 인력을 경쟁사에 빼앗긴다면 그 손실이 훨씬 더 크다.

산업스파이와 기술 유출을 차단하려면 기업과 국가의 중요자산을 보호할 수 있는 당근과 채찍을 병행해야 한다. 또 기업 스스로 핵심 인력을 예우할 때 최고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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