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6월 10일 14:1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프레시지의 최대주주인 홍콩계 사모펀드(PEF) 앵커에쿼티파트너스(PE)가 밀키트 생산·유통 업체인 프레시지의 창업자를 경영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프레시지의 실적과 재무구조가 나날이 나빠진 데 따른 결정이다. 앵커PE가 프레시지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밀키트 산업 자체의 성장이 정체된 탓에 프레시지의 향후 전망도 어두운 상황이다. 앵커PE의 장기인 '볼트온' 전략도 프레시지엔 먹혀들지 않아 앵커PE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악화일로 걷는 프레시지 재무구조
10일 투자은행(IB)에 따르면 정중교 프레시지 창업자는 지난 4월 5일 프레시지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프레시지가 2021년 닥터키친을 인수한 뒤 프레시지 공동 대표를 맡아오던 박재연 닥터키친 창업자도 같은 날 대표직을 내려놨다. 프레시지의 신임 대표는 허닭의 창업자인 김주형 대표가 맡았다. 이번 대표 교체는 프레시지의 지분 64.43%를 보유한 최대주주 앵커PE의 의지가 담긴 조치다. 안상균 앵커PE 아시아 대표와 변성윤 앵커PE 한국 대표는 기타비상무이사로 프레시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앵커PE의 압박에 정 창업자는 올해 초부터 사실상 프레시지 경영에서 손을 뗀 것으로 전해진다. 정 창업자는 프레시지를 떠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앵커PE가 창업자를 내쫓는 결정까지 내린 건 프레시지의 실적과 재무구조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지는 지난해 3306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전년(5300억원) 대비 37.7% 급감했다. 지난해 순손실은 2239억원에 달했다.
앵커PE는 2021년 구주 일부를 인수하고,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약 3000억원을 투입해 프레시지 최대주주에 올랐다. 앵커PE가 프레시지를 인수하는 과정에 투입된 대량의 자금은 이미 고갈 직전이다. 지난해 말 기준 프레시지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576억원에 불과하다. 2022년과 지난해 프레시지의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 유출은 각각 774억원, 408억원에 달했다. 영업활동만으로도 올해 말이면 프레시지의 현금이 바닥날 우려가 있는 셈이다.
차입금 만기도 속속 도래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프레시지의 단기차입금과 유동성장기부채는 총 412억원에 달한다. 은행권에서 한계에 치달은 프레시지의 재무구조를 우려해 롤오버를 해주지 않으면 프레시지가 맞닥뜨릴 재무부담은 더 커진다.
만기가 연장되더라도 이자부담이 늘어 프레시지의 목을 조여갈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지는 최대 8.65%의 고금리를 부담하며 금융권에서 돈을 끌어다 쓰고 있다. 지난해 이자비용으로만 40억원을 지출했다. IB업계 관계자는 "올해 추가 투자 유치가 없다면 프레시지는 사실상 디폴트 위기에 내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내 코가 석 자'인 앵커PE
일각에선 앵커PE가 공격적으로 추진한 볼트온 전략이 프레시지의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2021년 말 앵커PE가 최대주주에 오른 뒤 프레시지는 건강·특수식 전문기업 닥터키친과 간편식 기업 허닭, 물류업체 라인물류시스템, 밀키트업체 테이스티나인 등 유관 기업을 차례로 인수했다.앵커PE는 그간 유관 기업을 추가로 인수해 포트폴리오사의 몸집을 키운 뒤 되파는 볼트온 전략으로 큰 재미를 봤다. 프레시지 인수 후에도 볼트온 전략을 가동했지만 코로나19가 수그러들고 간편식 시장이 전반적으로 부진하자 이 전략은 되레 독이 됐다. 허닭과 라인물류시스템은 지난해 각각 95억원, 63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닥터키친과 테이스티나인 역시 인수 이후 줄곧 순손실을 내다가 지난해 프레시지에 합병됐다.
인수한 회사들이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자 프레시지는 인수기업들의 영업권을 상각 및 손상차손 처리했다. 프레시지는 2022년엔 영업권 305억원을 상각하고, 711억원을 손상 처리했다. 지난해엔 252억원의 영업권을 상각하고, 820억원을 손상 처리해 영업권을 모두 털어냈다. 이는 고스란히 프레시지 실적에 반영됐다.
프레시지의 생존을 위해 추가 투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최대주주인 앵커PE도 상황이 좋지 않아 추가 투자를 망설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앵커PE는 지난해부터 메타엠과 엔코아, 단비교육, 교육지대 등 보유한 포트폴리오를 앞다퉈 시장에 내놓고 있다. 해외 출자자(LP)의 투자금 회수 요구가 거세지면서다. 하지만 매물들의 매력이 떨어지는 탓에 매각 작업의 진도가 나가지 못하고 있다. 앵커PE 내부적으로도 핵심 인력들이 이탈하고, 한국에서의 신규 투자가 사실상 중단되는 등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