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때문에 해코지당할까 너무 불안합니다. 최대한 빨리 이사가려 합니다.”(서울 이촌동 A아파트 입주민 K씨)
지난달 30일 오후 6시께 서울 이촌동 A아파트 앞. 용산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아파트 주위를 맴돌며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층간소음 갈등으로 인해 한 입주민이 경비원에게 칼을 들이 미는 등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다. 입주민 B씨는 “밤낮할 것없이 들려오는 고함 소리와 집 안에서 보행기를 끄는 소리에 참다참다 이웃들이 층간소음 신고를 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흉기 위협이었다”고 했다.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놀고 있다. 층간소음 때문에 발생한 이웃간 갈등이 칼부림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층간소음 상담 건수는 3만6435건에 달했다. 4년 전인 2019년 2만6257건 보다 38.7% 증가한 수치다. 이웃간 층간소음 갈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강력범죄도 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층간소음으로 시작된 살인·폭력 등 5대 강력범죄는 2016년 11건에서 2021년 110건으로 5년 새 10배 증가했다.
지난 4월 기준 국내 공동주택 수는 1141만여가구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아파트를 짓는 비교적 소음에 취약한 판상형 구조로 아파트가 지어지고, 건설사가 원가 절감을 추구하며 아파트 상당수가 방음에 취약한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주거형태 상 층간소음 문제가 늘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국내엔 빌라,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많은데다, 좌식 문화가 자리잡고 있어 다른 주거건축 형태를 띈 국가에 비해 층간소음이 심각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층간소음을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대부분 관리사무소나 입주민 등으로 구성된 층간소음 관리위원회에서 층간소음 문제를 1차적으로 다룬다. 그런데 실제 층간소음이 발생하면 경고 방송 등에 그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할 때가 많다.
A아파트의 다른 입주민 C씨는 “층간소음으로 민원을 넣었을 때 경비원 분께서 별도로 관리사무소나 위원회에 보고를 하지 않아 이후 문제는 더 커졌다”고 했다. 해당 가구에 인터폰으로 ‘주의해달라’고 말하는 데 그치다 보니 오히려 갈등을 키웠다는 것이다.
정부가 층간소음을 해결하기 위해 중재기구 등을 마련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중재기구는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주택관리법과 해당 지자체의 조례에 따라 공동주택관리분쟁조정위원회를 운영해 해결하는데, 층간소음 처벌 규정은 미약하기에 해결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웃간 갈등이 칼부림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종종 벌어진다. 지난 3월 경기 용인시 수지구 아파트에선 50대 주민이 층간소음로 갈등을 빚던 윗집 주민을 흉기로 찔러 부상을 입힌 사건이 벌어졌다. 1월에는 경남 사천시 한 빌라 계단에서 층간소음에 항의하던 주민이 위층 주민을 찔러 살해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층간소음에 지속해서 노출될 경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폭력,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건이 종종 빚어지고 있다”며 “층간소음으로 보복 행위를 범하거나 강력범죄가 생기는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수사기관에서 관련 처벌 사례 등을 적극 홍보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안정훈/김다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