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2000만~3000만원대 저가 전기자동차를 줄줄이 내놓고 있다. 비야디(BYD) 등 중국 자동차 회사들이 선보인 1000만원대 전기차에 맞대응하기 위해서다. 웬만한 내연기관차보다 저렴한 차량으로 전기차 ‘캐즘’(대중화 직전 일시적 수요 감소)을 이겨낸다는 복안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스텔란티스,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회사들은 최근 2만달러대 전기차 양산을 선언했다. 카를루스 타바르스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9일 미국의 번스타인 투자자 콘퍼런스에서 “2만5000유로(약 2961만원)짜리 시트로엥 ‘e-C3’를 출시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곧 2만5000달러 ‘지프’를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지프 엠블럼을 단 보급형 모델로 전기차 시장을 뒤흔들겠다는 얘기다. 타바르스 CEO는 “저렴한(affordable) 전기차 기준은 유럽에선 2만유로, 미국에선 2만5000달러”라고 말했다.
도요타에 이은 세계 2위 완성차 그룹인 폭스바겐도 최근 2000만원대 보급형 엔트리급 전기차 ‘ID.1’을 2027년부터 팔겠다고 밝혔다. 폭스바겐은 내년에 ‘ID.2’를 선보이고, 2026년 ID.2 SUV를 출시하는 데 이어 2027년 저가 차종인 ID.1을 내놓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베스트셀러 모델인 ‘골프’를 닮은 ID 시리즈 중 ‘ID.4’는 지난달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유럽 전기차 모델이다.
ID.1은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작은 차체로 제작되며 판매 가격이 1만7000유로(약 2400만원) 안팎으로 논의되고 있다. 유럽에서 출시되면 르노가 지난해 말 내놓은 2만유로 이하 저가 전기차인 ‘트윙고’와 경쟁하게 된다.
글로벌 완성차 회사들의 저가 전기차 시장 참전을 부른 건 중국 업체들이다. BYD가 내놓은 6만9800위안(약 1291만원)짜리 보급형 전기차 ‘시걸’이 인기를 끌면서 이에 대응할 필요가 높아져서다. BYD는 이뿐 아니라 최근 100개가 넘는 세부 모델별 가격도 지난해 12월보다 인하했다. 가장 많이 팔리는 ‘진 플러스’는 7만9800위안(약 1476만원)으로 20% 낮췄다. 그러자 테슬라도 2만5000달러 가격표를 단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맞불을 놨다.
국내 업체는 아직 보급형 전기차 출시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현대자동차·기아의 가장 저렴한 전기차는 레이EV로 2735만원부터 시작한다. 현대차 니로와 코나 등은 4000만원대다. KG모빌리티의 토레스 EVX도 5000만원에 육박한다. 기아가 조만간 출시하는 EV3는 3만5000~5만달러 사이에서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유연홍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원은 “전기차 판매가 주춤한 원인 중 하나는 높은 가격”이라며 “저가 모델이 늘어나면 전기차 시장이 캐즘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재후/신정은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