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엎드려 있던 은빛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에 전원이 켜졌다. 인체로 비유하면 발목과 무릎, 골반, 허리와 목 관절에 해당하는 액추에이터가 순서대로 360도 회전했다. 움직임은 부드러웠다. 전기 모터가 돌아가며 내는 ‘윙’하는 작은 소리만 들렸다. 로봇 제조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최근 공개한 차세대 휴머노이드 ‘아틀라스’가 움직이는 모습이다.
케빈 블랭크스푸어 보스턴다이내믹스 수석부사장은 2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는 주로 산업용 로봇을 상용화하고 있지만 향후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로봇도 개발할 것”이라며 “인류는 로봇이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되는 미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손실 ‘1경원’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로봇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아틀라스 외에 4족 보행 로봇 개 ‘스폿’, 창고 자동화 물류 로봇 ‘스트레치’ 등이 주력 제품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20년 8억8000만달러(약 1조2000억원)를 투자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세계적 물류기업 DHL과 영국 에너지기업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세계 최대 해상운송기업 머스크 등을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다.블랭크스푸어 부사장은 아틀라스 등이 다양한 환경에서 균형을 잡고 걸을 수 있도록 하는 제어 소프트웨어(SW)를 최초로 개발한 인물이다. 그는 29일 ‘차세대 통신(NEXT G)과 로보틱스: 새로운 시대’를 주제로 열리는 스트롱코리아 포럼 2024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한다. 스트롱코리아 포럼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 주최하는 행사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이전 버전의 아틀라스에 장착됐던 28개의 유압식(HD) 액추에이터를 전기 모터와 인버터로 구성된 전기식 액추에이터로 교체했다. 기름을 매개로 동력을 전달하던 기존 방식과 비교해 훨씬 가볍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블랭크스푸어 부사장은 앞으로 로봇의 필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했다. 고령화와 인건비 증가로 인한 노동력 부족 현상이 세계적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콘페리에 따르면 노동력 부족 현상으로 인한 경제적 손해는 2030년 8조5000억달러(약 1경1628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해 독일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친 것과 맞먹는다.
“차세대 통신 결합한 로봇은 필수”
산업계에 필수 요소가 된 로봇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차세대 통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블랭크스푸어 부사장은 로봇 개 스폿을 예로 들며 설명했다. 스폿은 ‘오빗’이라고 불리는 데이터 수집·분석 시스템을 통해 관리되고 있다. 스폿을 활용해 영상 검사 및 열 화상 분석, 음향 누수 감지 등을 하려면 대용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통신망이 갖춰져야 한다.스폿은 현대차그룹이 컨베이어벨트 없는 최첨단 공장으로 건설한 싱가포르글로벌혁신센터(HMGICS)에서 활동 중이다. 차체에 조립된 부품이 순서에 맞게 제대로 장착됐는지 확인하는 역할 등을 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스폿의 성능을 고도화하고 아틀라스 등을 HMGICS에 투입하기 위해 현재 마련된 설비 이상의 초대용량·초고속·초저지연 통신망을 구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폿에는 미끄러운 표면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새로운 걸음걸이가 적용돼 있다. 오빗을 통해 구현된 인공지능(AI) 덕분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로봇팔과 진공흡입기를 활용해 20㎏이 넘는 상자를 쉬지 않고 16시간 이상 쌓아 올릴 수 있는 물류 로봇 스트레치도 언급했다. 블랭크스푸어 부사장은 “오빗과 같은 중앙 집중식 SW 플랫폼은 스폿 외에 아틀라스와 스트레치에서 수집된 방대한 데이터를 통합할 것”이라며 “산업 현장에서 마주하는 잠재적인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초고속 통신망과 연결된 데이터센터 덕분에 대규모언어모델(LLM)이 구현된 것과 마찬가지로, 대용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차세대 통신망이 구현된다면 산업용 로봇에 최적화된 AI를 사업장마다 구축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