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이 주식 시장에서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상장지수펀드(ETF)가 무더기로 퇴출 수순을 밟게 됐다. 국내 시장 규모에 비해 종목 수가 상당히 많은 구조라 정리 수순을 밟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유동성이 부족한 ETF는 상장 폐지될 수 있어 투자에 주의하라고 조언했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다음달 국내 ETF 16개 종목이 운용사 요청에 따라 상장 폐지된다. 상장 폐지 종목은 ▲KBSTAR 200IT ▲KBSTAR 200에너지화학 ▲KBSTAR 200중공업 ▲KBSTAR 200철강소재 ▲KBSTAR 200건설 ▲KBSTAR 200경기소비재 ▲KBSTAR 200산업재 ▲KBSTAR 200생활소비재 ▲KBSTAR 200커뮤니케이션서비스 ▲KBSTAR 모멘텀로우볼 ▲KBSTAR 모멘텀벨류 ▲KBSTAR 미국장기국채선물 인버스2X(합성H) ▲KBSTAR KRX300 미국달러선물혼합 ▲KBSTAR KRX기후변화솔루션 ▲ARIRANG 200동일가중 ▲ARIRANG KRX300 등이다. 상장 폐지 예정일은 6월 26일이다.
이번 상장 폐지 종목 가운데 KB자산운용의 ETF만 14개에 달한다. 한화자산운용도 2개 종목이 포함됐다. 한번에 14건에 달하는 상장 폐지를 결정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자산운용사들이 1년에 1개~4개 가량 상장 폐지를 통해 종목을 정리한다"며 "KB자산운용의 이번 결정은 전략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B자산운용은 올해 초 한국투자신탁운용에서 ETF 리브랜딩을 주도했던 김찬영 ETF 본부장을 영입해 ETF 사업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KB자산운용 측은 "개인 투자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위주로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하반기 리브랜딩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KB자산운용은 상장 폐지일까지 ETF를 보유한 투자자에게 순자산 가치를 기준으로 산출된 해지 상환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현재 자본시장법상 순자산 총액이 50억원 미만인 ETF는 상장 폐지할 수 있다. 공모 펀드의 경우 소규모 펀드(설정 1년이 경과한 펀드 순자산 총액 50억원 미만, 일 평균 거래 대금 500만원 미만) 비율이 5%를 넘으면 신규 펀드 출시를 제한하고 있다.
ETF가 투자한 기업들은 그대로 시장에 거래되면서 가치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상장 폐지가 결정되더라도 ETF 가치 만큼 투자자는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상장 폐지일까지 해당 ETF를 보유하는 경우에는 순자산 가치에서 운용 보수 등의 비용을 차감한 해지 상환금이 지급된다. 다만 원하지 않는 시점에 투자를 그만둬야 하는 만큼 장기 투자를 계획하고 매수한 ETF의 시장 가격이 하락했다면 손실이 발생한다.
문제는 소규모 펀드에 해당하는 ETF가 아직도 많다는 점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7일 기준 순자산 총액이 50억원 미만인 종목은 85개에 달한다. 국내 상장된 전체 ETF 864개 가운데 10%(9.83%)에 가까운 수치다. KB자산운용이 22개로 가장 많고, 한화자산운용이 16개로 그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NH아문디자산운용(10개), 키움자산운용(10개), 한국투자자산운용(9개), 미래에셋자산운용(8개), 흥국자산운용(3개), 신한자산운용(2개), 삼성자산운용(2개) 순이었다. 브이아이자산운용과 KCGI자산운용, 현대자산운용의 ETF도 1개씩 들었다.
전문가들은 상장 폐지를 피하려면 ETF 투자 시에 펀드 규모가 크고 거래량이 활발한 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유동성이 줄면 유동성공급자(LP)에는 주식 보유 물량 부담이 생기고 투자자는 점차 환매에 나서면서 설정액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자산운용사 입장에서도 운용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거래량이 떨어진 ETF를 청산하고 수요가 있는 새 상품을 출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봤다.
이지효 기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