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통 대기업들이 최근 잇달아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매출은 줄고, 이익은 감소하고, 손님은 확 줄었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규제 과잉’이다.
규제 원년은 2012년이었다. 그해에 유통업체의 갑질로부터 납품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유통업법이 제정됐다. 골목상권 보호를 명목으로 대형마트의 주말 의무휴업제도 도입됐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다. 국내 유통업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생필품 위주의 저렴한 가격대가 주종을 이루던 종합 유통채널의 상품이 양질의 고급 상품 위주로 재편되면서 대형 제조·납품업체의 입김이 커졌다. 중국산 온라인 유통업체의 시장 잠식은 파죽지세다. 반면 온라인몰 등 다양한 업태의 유통채널이 생기면서 유통사의 협상력은 약화됐다.
그러나 단지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유통사는 아직도 모든 납품업체에 갑질을 할 지위로 간주돼 규제를 받는다. 다시 질문해본다. 대형 백화점 3사도 쩔쩔매는 샤넬, 루이비통 등 해외 명품 브랜드를 국내 중소 납품업체와 동일한 선에서 보호하는 것이 정당한가.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래를 중단하고 중국 온라인몰로 옮기는 대기업 납품업체를 특별히 보호하는 것이 맞는가.
대규모유통업법은 납품업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유통사의 납품단가 협상력을 제한했다. 소비자 구매를 증대하기 위해 유통사는 판매가격 경쟁을 하고, 납품업체들은 다양한 판촉 행사를 하거나 유통업체에 대한 판매장려금 거래를 해 판매량을 늘리려고 노력한다. 이런 과정은 자연스럽게 실질적인 물가 인하의 효과를 발생시킨다. 하지만 지금의 규제는 유통업체와 납품업체의 판촉 행사나 판매 장려 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이는 사실상 유통업체의 협상력을 꺾는 것이고, 납품업체의 판촉 활동과 상품 판매 장려의 수단을 꺾은 것이다. 대기업 제조사를 보호하기 위해 소비자를 희생시키는 꼴이다.
이젠 유통 규제가 아니라 동반 정책이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 온라인몰의 시장 침투는 가속화될 것이고 이로 인한 압박은 고스란히 국내 중소 제조업체가 받을 것이다. 결국 물가 상승과 소비자 후생의 감소를 불러올 것이다. 규제 탓에 운신의 폭이 작은 국내 유통사는 제대로 된 대응도 못 하고 외국 유통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릴 공산이 크다.
2012년 유통 규제의 씨앗이 가져온 결실이 2024년 오늘의 현 상황일 것을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12년간 묵은 유통 규제를 지금의 상황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 유통업체가 대기업 납품업체나 해외 명품업체와 대등한 수준에서 협상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 유통업체들이 건강하게 성장해야 중소 제조업체의 판로가 더 확대되고 소비자도 더 많은 판매 촉진 행사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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