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에서 민방위 훈련 안내방송이 울렸던 지난 14일, 세종 어진동의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동문에선 때아닌 노동가(歌)가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속 10여명은 이날 ‘기재부의 인사 갑질 규탄한다’나 ‘기재부는 인사계획 철회하라’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기자회견을 했다.
마이크를 잡은 석현정 공노총 위원장은 “기재부 공무원은 양반이고 지자체 공무원은 머슴인가”라며 “기재부의 이권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고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세종 관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공노총은 예산권을 앞세운 기재부가 지자체의 과장 자리를 빼앗아 소속 공무원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노총에 따르면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1월 열린 시도경제협의회에서 각 시도에 “기재부에서 보낸 재정협력관들에게 ‘보직 과장’ 직위를 부여해달라”고 요청했다.
지자체에선 “내부 직원의 승진 자리가 없어지는 만큼 곧바로 보직 과장 자리를 주긴 어렵다”고 했지만, 기재부는 지난 3월 각 지자체에 재차 과장 직위를 부여해줄 것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인사교류 관련 제안이 있었던 것은 맞다”라면서도 “과장 직위를 부여해달라고 강요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는 구조”라고 해명했다.
이 상황을 이해할 실마리는 기재부의 극심한 인사 적체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재부는 다른 부처와 비교해도 승진이 느린 것으로 유명하다. 행시 재경직에 합격한 후 기재부 사무관(5급)으로 입직해 서기관(4급)으로 승진하기까지 길게는 15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등 다른 부처의 경우 사무관에서 서기관 승진하기까지 짧게는 8년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배 가까이 차이 나는 셈이다. 명절날 고향을 찾은 기재부 사무관 중엔 가족들로부터 “직업이 사무관이냐”는 핀잔을 드는 경우도 많다.
지자체 재정협력관은 기재부의 심각한 적체 현상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다. 광역지자체로 가는 재정협력관은 주로 비고시 출신의 기재부 소속 4급 공무원이 많다. 이들을 보직이 정해진 지자체 재정협력관으로 보내는 대신 행시 출신 5급 사무관들이 올라올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기재부가 인사 티오(TO)가 빠지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자체와 인사교류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기재부 관계자는 “인사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라고 토로했다.
물론 지자체에서도 재정협력관에 대한 수요가 크다. 이들이 기재부 예산실과 접촉하면서 각종 네트워크를 앞세워 각 지자체의 지역 사업을 설명하고 예산을 확보해주기 때문이다. 지자체에서만 근무했던 직원은 기재부 예산실이 운영되는 구조나 분위기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기재부에서 온 재정협력관의 활약에 기대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예산실에서도 기재부 사정을 잘 이해해주는 재정협력관이 있으면 지역 사업에 대한 파악도 한결 수월하다.
재정협력관을 받은 지자체는 소속 5급 사무관을 기재부로 보낼 때가 많다. 기재부의 정책부서나 기획 관련 부서에서 1~2년간 근무하면서 역량을 키울 수 있어서다. 정부 관계자는 “지자체는 중앙부처 가운데서도 정책·기획 능력이 으뜸인 기재부의 우수인력을 활용하고 싶어 하고, 기재부는 일선 업무를 도맡을 5급 사무관을 원한다”며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지자체로 파견간 기재부 출신 재정협력관도 애로사항은 있다. 지자체 직원들의 업무지원을 받지 못하는 ‘나 홀로 팀장’이나 ‘나 홀로 과장’인 재정협력관은 정부세종청사와 소속 지자체에 매일 오가면서 복잡한 연락·전산 업무를 해야 할 때가 많다.
소속 부처를 떠나는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자체를 찾은 재정협력관 입장에선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기재부가 지자체에 재정협력관을 보직 과장으로 임명해 원활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길 바라는 이유다. 김 차관이 보직 과장 직위 부여를 검토해달라고 발언한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란 분석이다.
문제는 이런 논의에서 완전힌 소외된 5급 이하 지자체 소속 공무원이다. 이들 입장에선 “기재부가 보낸 낙하산 인사에 과장 승진 자리를 빼앗겼다”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기재부가 예산권을 앞세워서 승진 자리를 강탈한다”는 과격한 주장도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중앙부처와 지자체간 인사교류를 통해 ‘칸막이 행정’을 타파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론 승진 자리다툼으로 번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광식/곽용희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