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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에 머물렀던 일본이 디지털 전환(DX)에 나서면서 일본은 국내 스타트업에 놓쳐선 안 될 시장이 됐습니다"(이준승 샤플앤컴퍼니 대표)
지난 16일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에서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최한 스타트업 경진대회 디데이의 우승자 샤플앤컴퍼니의 이 대표는 이처럼 말했다. 샤플앤컴퍼니는 현장 근로자의 근태와 업무관리 등을 디지털화해 관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 일본 법인을 설립했으며 이달부터 도쿄 CIC(캠브릿지 혁신센터)에 입주해 일본 진출에 나섰다. 이 대표는 “아시아 최대의 B2B(기업간거래) 시장인 일본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라며 “일본은 한국과 문화적으로 비슷하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워 협력을 통한 시너지가 상당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K스타트업 10곳 일본 진출
일본이 스타트업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국내 초기 스타트업의 일본 진출이 빗발치고 있다. 수만 명이 몰린 일본 스타트업 콘퍼런스 스시테크와 디캠프 디데이 등에서 국내 스타트업은 일본 현지 기업과 솔루션 공급 등을 논의했다. 이들은 일본 기업이 디지털화가 느려 인력 부족과 비효율 등의 만성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 국내 스타트업이 혁신 서비스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 현지 네트워킹을 강화해 일본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이날 글로벌 디데이 행사에서 국내 스타트업 10곳이 무대에 올라 회사를 소개하며 일본 진출 계획을 발표했다. 신한벤처투자와 글로벌브레인, IMM JAPAN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10곳 중 우승팀으로 샤플앤컴퍼니를 선정했다. 글로벌 디데이는 디캠프의 스타트업 해외 진출 데뷔무대로 출전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멘토링과 파트너사 매칭, 글로벌 진출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박영훈 디캠프 대표는 ”일본 진출은 국내 스타트업이 글로벌로 나가는 첫 번째 발판이 될 것"이라며 “디캠프는 키라보시은행과 신한벤처투자 등과 협력해 스타트업의 일본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스타트업 이외에도 일본 벤처캐피탈(VC)과 현지 기업, 정부 기관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일본 최대 VC인 글로벌 브레인의 유리모토 야스히코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은 일본에 진출해 짧은 기간에 큰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디캠프 지원을 받아 신한그룹과 한일 펀드를 조성했다”며 “이 펀드를 활용해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일본 진출을 지원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본 현지 기업과 서비스 도입 논의
지난해부터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를 통해 일본 진출을 준비해온 스타트업 틸다는 이날 행사를 통해 일본 은행과 제조업체 등 10여곳과 서비스 도입을 논의했다. 틸다는 머신러닝을 통한 제조·설비 최적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으로 기업의 비효율을 개선하고 생산성을 최대화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정지량 틸다 대표는 ”일본의 기업과 첫 계약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곧바로 일본 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인재 매칭 스타트업 커리어데이의 강경민 대표는 “일본 스타트업과 대기업 등에 국내 반도체와 뷰티, 엔터 등의 전문가를 연결해 인력난을 해소하는 솔루션을 공급할 계획"이라며 “일본은 2018년부터 겸업 금지 조항이 사라지면서 부업 시장이 굉장히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하반기부터 일본에서 시범 서비스를 진행할 것"이라며 “일본VC의 투자를 받아 일본 네트워크를 뚫는 것도 재무적 투자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I 웹툰 스타트업 리얼드로우의 최상규 대표는 “일본의 디지털 웹툰 시장은 5000억엔(4조3000억원)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이라며 “코로나 이후 웹툰 회사의 경영이 악화하면서 웹툰의 저렴한 공급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AI 웹툰 서비스를 도입할 경우 컷당 제작 시간은 2분으로 단축되며 작가와 엔지니어, 3D 디자이너 단 3명으로 웹툰을 만들 수 있어 비용 절감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개인정보 보호 스타트업 오내피플은 20개 이상의 일본 기업과 서비스 도입을 논의 중이다. 올해 중 일본 현지 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남정효 오내피플 최고사업개발책임자(CBDO)는 “일본은 세계적으로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인식이 굉장히 높다”며 “오내피플을 통해 기업은 개인정보 보호에 드는 비용을 96% 이상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과 한국은 개인정보 관련 규제가 유사해 현지화에도 유리하다"고 했다.
이외에도 인공지능(AI) 기반의 화물운송 매칭 솔루션 업체 곳간로지스와 디지털 헬스케어 업체 에버엑스, 코스메틱 업체 비브이엠티, 펫테크 그라스메디, LLM 기업 최적화 사이오닉에이아이 등이 참여했다.
○스시테크, 전 세계 47개 도시 참여
일본의 관광 대기업 HIS와 신용카드 업체 오리코, 헬스케어 유글레나 등은 디데이에 이어 진행된 글로벌 커뮤니티 프로그램 ‘모크토크’에 참여해 국내 스타트업과 협업 방안을 논의했다. HIS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여행사들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며 “한국 스타트업과 협력해 다양한 신사업을 발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도쿄 빅사이트에선 아시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콘퍼런스인 ’2024 스시테크'가 15일부터 이틀간 열렸다. 전 세계 47개 도시에서 429개 기업이 참여했다. 디캠프는 스시테크에서 일본 키라보시 컨설팅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양국의 스타트업 네트워크 활성화와 해외 진출 지원 등을 논의했다. Yoshiaki Hoshi 키라보시 컨설팅 이사는 “한국 스타트업의 일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며 ”한일 양국에서 계속해서 교류하며 네트워크를 쌓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스시테크에 참여한 매장 자동화 스타트업 파인더스에이아이 관계자는 “히로시마의 가장 큰 식품 업체와 서비스 도입 논의를 하고 있다"며 ”지방은 구인난이 심해 매장을 운영할 인력도 없어 무인화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부동산 기업 미쓰이의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인 31벤처스 관계자는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2027년까지 10조엔(90조원)을 투자해 스타트업 10만개를 육성할 계획이다. 스타트업 2000여개가 몰려 있는 시부야는 ‘시부야 스타트업 주식회사’를 설립해 일본 창업을 위한 비자 지원과 사무 공간 제공에 나섰다. 한국 중소기업벤처부는 K스타트업센터(KSC)를 도쿄에 신설해 국내 스타트업의 일본 진출 지원에 나섰다.
라인 사태 이후 국내 스타트업이 일본 진출 시 외환법 등의 규제를 더욱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일본의 외환법은 외국인 투자를 제한해 외국인이 국가 안보와 인프라 관련 산업에 지분을 1% 이상 매입하면 사전에 신고를 해야 한다. 일본의 노조미종합법률사무소의 유새벽 변호사는 “한국 스타트업 10곳 중 5곳 이상은 관행상 사전 신고를 하지 않고 일본에 진출해왔다"며 “라인 사태 이후 외환법 등을 꼭 신고해 추후 문제가 될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외환법과 더불어 개인정보 보안과 관련해서도 강화된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강호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