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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와 교육이 '시장경제 양극화' 해결할 최고 치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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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줘도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란 기부에 대한 일부 국제사회의 편견을 깨뜨린 가장 강력한 증거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정갑영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은 1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니세프는 공여국과 수혜국으로 나라를 구분하는데, 1950년 설립된 이후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국가 지위가 바뀐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1994년 출범한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한국위원회는 설립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 정 회장의 설명이다. 기부를 통해 한 사람의 인생뿐 아니라 한 국가의 운명도 바꿀 수 있다는 좋은 예가 되고 있어서다. 그는 기부가 시장경제의 단점을 해결할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했다. 정 회장은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 시장경제보다 더 좋은 시스템이 없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다”며 “다만 시장경제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빈부 격차를 해소해야만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총장을 지낸 정 회장은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양극화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육”이라며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더라도 자기 실력을 계발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대학이 겪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최소한의 기준으로만 이용하고, 각 대학이 인재 선발 기준을 마련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학교별로 경쟁력 있는 학과를 설치하고 운영하기 위해선 재정적인 자립도 중요하다”며 “등록금 인상도 대학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출범 30년을 맞았습니다.

“한국위원회는 설립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유니세프에는 기부금을 모으는 공여국과 이를 받는 수혜국이 있습니다. 1950년 유니세프가 세워진 이후 국가 지위가 변경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사실 도움을 줘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한국은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위원회는 설립 첫 해인 1994년 350만달러의 기금을 모아 본부에 보냈는데요. 지난해에는 1억1500만달러를 송금했습니다. 미국 일본 독일과 함께 유니세프 모금 대국으로 성장한 것이죠.”

▷한국 기부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개인 기부가 많고 기업의 기부는 적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유니세프 개인 후원자는 50만 명으로 33개 공여국 중 1위입니다. 유엔 기구인 유니세프에 대한 신뢰 등으로 개인 기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의 후원은 전체 기부액의 5~6%에 그칠 정도로 매우 적습니다. 다른 선진국의 경우 50%가 넘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쉬움이 더 큽니다.”

▷기업의 기부가 늘어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장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기업의 기부가 필수적입니다. 그간의 역사에서 이미 증명됐듯이 시장경제에서만 꾸준한 경제 성장이 가능합니다. 다만 시장경제의 큰 문제는 빈부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이런 양극화를 해결해야만 시장경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데, 여기에 기업들의 기부가 꼭 필요합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나 같은 자선가가 있어야 시장경제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했는데 매우 공감이 갑니다.”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가장 좋은 방법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에서는 세대 간 중첩되는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소외계층이 좋은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의 가장 큰 목표는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더라도 자기 실력을 계발하고, 잠재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한국 역시 교육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교육, 특히 대학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습니다.

“한국 대학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 주도’라는 점입니다. 경제 발전 초기에는 대학이라는 제도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의 관여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죠. 교육 이슈가 정치화된 것도 문제입니다. 대학 등록금이 대표적이죠. 대학 등록금 인상이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그 어떤 정치인도 손을 대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학은 사회에서 버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등록금 동결을 비롯한 대학의 위기가 지적된 것이 10년이 넘습니다.

“이대로 대학의 위기가 10년만 더 이어진다면 한국 대학 교육은 손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중상위층은 한국 교육에 만족하지 못해 자녀를 미국 등 해외 대학으로 보내는 일이 일상화될 것입니다. 한국 대학의 프리미엄이 떨어지고, 인재가 유출되는 것이죠. 지금까지 인재가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이끌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가의 미래에 매우 부정적인 신호입니다.”

▷해결 방법은 없습니까.

“대학에 자율성을 줘야 합니다. 일단 수능은 예비고사 식으로 전환하면 좋다고 봅니다. 일정 수준만 넘으면 패스하는 방식이죠. 이를 통해 정원의 두 배 정도만 뽑고, 이후에는 각 대학이 각자의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죠. 한발 더 나아가 자율형 사립대를 만드는 것도 검토해야 합니다. 등록금, 학생 선발 등에서 대학에 완전한 자율권을 주는 것이죠. 대학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며 성장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자율형 사립대의 부작용도 우려됩니다.

“경쟁을 허용하되 그 과정에서 나오는 낙오자,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합니다. 자율형 사립대를 만드는 대신 20% 정도는 소외계층에서 뽑고, 장학금을 준다면 부작용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기회균등은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동일하게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에게나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줘야 해요.”

▷인공지능(AI) 등이 일상화되는 시대에 대학 교육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AI 등 기술혁신으로 대학에 가지 않고도 일반인이 얻을 수 있는 지식수준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대학 교육은 기존 교육보다 한 차원 높은 전문성을 제공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어질 것입니다. 대학 교육은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산업의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둬야 해요. 이를 위해 대학의 교육 수준이 기존보다 훨씬 더 전문적이고 융합적이며 창의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런 교육을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와 전문 연구인력, 석학이 필요하죠. 인터넷, AI 등에서 얻을 수 있는 보편적 지식수준을 가르치는 대학은 설 자리를 잃을 것입니다.”
"지방대 살리려면 제2 파슨스, 르코르동블루 키워야"
경쟁력 있는 특화 프로그램 필요
정갑영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은 지원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지방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특성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고 싶은 대학’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파슨스 디자인스쿨, 프랑스의 르코르동블루처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프로그램에 투자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글로컬 대학과 라이즈 등 지방대 살리기 정책도 자칫 재원만 낭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글로컬 대학에 5년간 1000억원을 지원한다고 해도 돈만 낭비할 수 있다”며 “지원에 앞서 학과 통폐합 등을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국 모든 대학이 지금과 같은 종합대학 형태를 지속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 회장은 “종합대학은 학령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던 시기에나 적합한 방식”이라며 “미국의 ‘리버럴 아츠 컬리지’같이 작지만 경쟁력 있는 대학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버럴 아츠 컬리지는 인문학, 사회학, 자연과학 등의 학문에 중점을 둔 4년제 대학으로 학생 수 3000명 미만의 소수정예식 교육을 하는 곳이다.

■ 정갑영 회장은…

△1951년 전북 김제 출생
△1975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198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석사
△1985년 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
△2012~2016년 연세대 17대 총장
△2016년~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2020년~ 대한항공 이사회 의장
△2021년~ 제3대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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