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기후 위기 대응에 앞장섰던 주요국 정부가 에너지 전환 비용을 기업, 가정 등 소비자에 전가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보조금 등을 지급해 민간 부문의 친환경 전환을 독려했지만, 재정 부족이라는 장벽에 부딪히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일(현지시간) "저금리에 에너지 공급량이 풍부했던 시절 수많은 기후 대책을 내놓았던 각국 정부가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 등 지정학적 위험에 따른 에너지 비용 급등 등으로 인해 새로운 계산법을 토대로 '에너지 전환 비용 청구서'를 재정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 재정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용이 치솟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일부 행정부는 "(기후 위기) 규제의 일시 중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흐름도 감지되고 있다.
이에 관해 에너지 전환에 대한 피로가 감지되고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회계컨설팅기업 EY가 20개국 10만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에너지 소비자의 4분의 3이 "지속가능성을 위해 이미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이상의 지출 여력이 없다는 의미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에너지 전환이 불균형적인 방식으로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며 "현재의 에너지 전환이 엘리트들에 의해, 엘리트들을 위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식이 가장 큰 난관"이라고 지적했다.
2045년까지 100% 신재생에너지 목표를 세운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대표적이다.캘리포니아 전력회사인 PG&E는 급증하는 전력망 업그레이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 전기요금을 127% 인상했다. 현재 고객의 거의 4분의 1이 요금을 연체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더해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최근 계량 방식을 변경한 것도 소비자들에 비용을 전가한 셈이라 할 수 있다.
그간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중소기업, 일반 가정은 한낮 작열하는 태양광에 과잉 생산된 전력을 전력회사에 판매해 수익을 올려왔다. 하지만 최근 주정부는 소비자들의 판매 전기를 낮은 가격으로 보상하고, 소비자들은 다시 필요한 전기를 구매할 때 다시 높은 가격을 지불하게끔 변경 설계됐다. 소비자들이 배터리저장장치 등을 설치하도록 유도해 전력망에 쏠리는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신규 태양광 패널 설치량이 급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아의 한 농장주는 "패널을 추가하는 것은 더 이상 재정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기후 정책 이니셔티브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2021~22년 회계연도에 1조3000억달러에 불과했던 전 세계 기후 재정은 2015년 파리기후협정 목표를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연간 약 9조달러로 증가해야 할 것으로 예상됐다. 4월에 발표된 신규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은 2030년 기후 위기 대응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에너지 인프라에 8000억유로를 투자해야 하고, 2050년까지 친환경 전환을 완료하려면 총 2조5000억유로를 투자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미국의 기후특사직에서 물러난 존 케리는 친환경 전환 목표를 둘러싼 최근의 이슈에 대해 "우리는 돈이 없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그는 이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에 대비하기 위해 '기후 금융' 등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부 재정의 뒷받침만으로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최근 부유세, 해운 부과금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는 정부가 늘고 있다. 미국은 대기업에 이익의 15%에 해당하는 최저 세율을 부과하고 주식 환매세 등을 통해 10년간 3000억달러를 조달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예산에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