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개봉한 영화 '공공의적'에서 조규환(이성재 분)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부모에게 반발하며 존속살해를 저지른다. 이런 일은 실제 현실에서도 벌어졌는데 30년 전인 1994년 5월 발생한 박한상 존속살해 사건이 그것이다. 금수저 집안 출신 박씨는 부도덕함과 반사회성을 보이다 금전적 이유로 부모를 흉기로 40차례 찔러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르는 등 패륜을 저질러 사회에 충격을 줬다. 현재까지도 최악의 존속살해로 꼽히는 이 사건은 영화 '공공의적'의 모티브가 됐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부모의 재산이나 보험금 등을 노린 자녀의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가족을 살해한 범죄자의 상속권은 어떻게 될까.
엄정숙 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는 유튜브 채널 '법도TV'를 통해 "상속권은 법률상 가족으로 얽힌 관계라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재산적 권리"라면서도 "다만 상속재산이나 보험을 노려 고의로 가족을 살해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상속인이 될 사람이 미리부터 재산을 받고자 배우자를 포함한 가족을 살해한다면 상속권은 물론 유류분권까지도 상실된다"고 전했다.
'유류분제도'란 법이 정한 최소 상속금액을 말한다. 형제가 두 명만 있는 경우 원래 받을 상속금액의 절반이 유류분이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이 총 2억일 때 상속금액은 각각 1억 원씩이고 유류분 계산으로는 그 절반인 5000만 원씩이다.
민법 제1004조 1호와 2호에는 '고의로 직계존속,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는 자는 상속인이 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다.
즉 부모님이나 배우자뿐 아니라 선순위 상속인이나 동순위 상속인을 살해하거나 미수에 그처도 상속권이 박탈된다는 뜻. 법률상 최소한의 상속금액을 보장하는 유류분권 역시 상속권이 사라진다면 권리 주장이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고의로 상해를 입혀 사망하게 된 경우에도 상속권은 사라질 수 있다.
엄 변호사는 "살인의 의도는 없었으나 상해를 입혀 결국 사망에 이른다면 살인과 마찬가지로 상속권이 사라질 수 있다"면서도 "다만 과실로 인한 사망 사고나 고의더라도 상해만 입는 경우는 상속권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이뿐 아니라 민법에서는 상속재산을 노린 살인 행위에 대해 넓은 범위에서 상속권을 제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자녀가 부모님의 재산을 노려 살해하는 행위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
상속권은 재혼한 부부 사이에서도 발생하고 자녀가 여러 명인 가정에서는 자녀가 공평하게 상속 지분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점에 불만을 품어 동순위 상속인을 살해하려 하거나 심지어 후순위 상속인임에도 선순위 상속인을 살해해 이익을 취하려는 경우가 있다.
엄 변호사는 "상속 지분의 이익을 얻으려 자신의 형제, 자매를 살해하는 행위 역시 상속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살인이나 상해를 입히지 않은 상황에서도 상속권이 상실되는 경우가 있다. 피상속인(돌아가신 분)의 생전 유언을 특정 상속인이 방해행위를 했을 때다.
민법에는 사기나 강박으로 피상속인(부모님)이 특정 상속인에게 유리한 유언을 하게 만들거나 유언철회 같은 방해행위가 있다면 상속권이 상실된다고 규정한다. 아울러 유언서를 함부로 위조하거나 변조 및 파기, 은닉하는 행위도 상속권이 박탈되는 사유로 판단될 수 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