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와 GNI의 차이
우선 국내총생산(GDP) 통계에 허점이 있다. GDP는 한 나라의 경제 상황을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GDP가 큰 폭으로 늘었다면 나라 경제가 큰 폭으로 성장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GDP가 곧 국민소득은 아니다. 국민총소득(GNI)이라는 별도의 지표가 있다.GNI는 GDP에 교역조건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교역조건은 쉽게 말하면 수출품과 수입품의 가격 비율이다. 만약 반도체 등 한국의 주력 수출품 가격이 하락하고 석유 등 주요 수입품 가격이 상승하면 실컷 수출하고도 외국에서 사 올 수 있는 물건이 별로 없게 된다. 이런 경우 GDP가 늘어도 GNI는 줄어들 수 있다. 다만 작년 하반기부터 교역조건이 개선되고 있어 최근 지표 경기와 체감 경기의 괴리를 교역조건 악화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배고픔과 배 아픔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부문별 격차다. 우리 집 장사는 그저 그런데 옆집은 장사가 잘되면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와 관련해 많이 거론되는 것이 ‘반도체 착시’다. 지난 1분기 수출은 1637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8.3% 늘었다. 하지만 반도체를 빼면 증가율이 1.6%로 떨어진다.수출의 온기가 내수까지 퍼지는 연결 고리도 약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04년 1분기부터 2024년 1분기까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상품 수출 증가가 민간 소비 증대로 이어지기까지는 한 분기의 시차가 있었다. 그나마 상품 수출이 1% 늘 때 민간 소비 증가 폭은 0.07%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잘나가는 업종과 부진한 업종, 수출과 내수의 격차는 임금 격차로 이어진다. 2022년 12월 기준 대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591만원이었다. 중소기업 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286만원으로 대기업의 반도 안 됐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연령대인 40대(2.2배)와 50대(2.4배)에선 차이가 더 컸다.
일자리가 많으면 행복할까
고용 지표도 겉으로만 보면 서프라이즈 수준이다. 작년 15~64세 실업률은 2.7%, 고용률은 69.2%였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실업률은 최저, 고용률은 최고였다.하지만 유의할 대목이 있다. 성별·연령별로 봤을 때 지난 10년간 고용률 상승 폭이 가장 큰 계층은 30대 여성과 60세 이상이다. 전체 고용률이 2013년 64.6%에서 2023년 69.2%로 높아지는 동안 30대 여성은 55.5%에서 68.0%로, 60세 이상은 38.4%에서 45.5%로 상승했다. 30대 여성의 고용률 상승은 결혼, 출산, 육아를 일정 부분 포기한 대가로 볼 수 있다. 60세 이상의 고용률 상승은 고령층의 노후 대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을 반영한다.
본업 외에 부업을 하는 ‘투잡족’도 늘었다. 1분기 투잡족은 월평균 55만2000여 명으로 1년 전보다 22.4% 늘었다. 역대 최고 고용률의 이면엔 결혼, 출산, 육아를 미루고 직장 생활하는 30대 여성,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고령층, 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투잡족이 있다.
내 돈은 어디로?
나라에서 가져가는 돈도 많아졌다. 작년 가구당 연소득은 5971만2000원으로 2019년 대비 26.4% 늘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처분가능소득은 17.0% 증가하는 데 그쳤다. 세금과 국민연금 부담금, 건강보험료 등이 늘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별로 증가하지 않은 것이다. GDP 대비 세금과 사회보장성 부담금의 비율을 뜻하는 국민부담률은 2022년 32.0%로 10년 연속 상승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무엇보다도 한 분기의 깜짝 성장률로 경기 회복을 논하기에는 한국 경제에 드리운 장기 저성장의 그림자가 너무 짙다. 바닥을 기던 경기 지표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고 해서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저성장 추세를 반전시키지 못하면 지표 경기와 체감 경기 간 거리는 좁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