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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석정, 죽서루, 월송정, 낙산사…. 예로부터 관동 지역의 명승지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장소의 매력에 빠져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 가면 꼭 정자나 누마루 같은 건물이 하나씩 서 있다. 그러나 그 건물들은 웅장하지 않다. 그곳의 주인공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이 경치를 잘 즐길 수 있도록 건물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생략의 미, 프레임으로서의 미를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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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는 아이디어를 모으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뒤 다양한 방면으로 고민했고, 상하이엑스포의 영국관 설계로 유명한 토머스 헤더윅이라는 건축가를 선정해 디자인을 맡겼다. 그는 하나하나의 단위를 활용해 건축물을 설계하는 데 장점을 가진 건축가인 만큼 피어에 남겨진 부러진 나무 기둥에서 영감을 받아 허드슨강에 박힌 콘크리트 기둥을 활용한 인공화분 형식의 공공공원을 제안했다. 총 280개의 피어화분은 강바닥에 고정돼 움직이지 않는 인공 구조물로 서로 연결돼 넓은 인공 지반을 만들었다. 강으로 나아가며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면서 사람들의 시야에 역동성을 준다. 섬의 끝부분에서는 허드슨강을 극적으로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 인공섬에 서면 뉴욕 맨해튼을 거꾸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인공섬은 그 자체가 주인공이 아니라 허드슨강과 뉴욕을 구경하는 최고의 장소가 되도록 자신을 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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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진 공간으로서의 리틀아일랜드와 비교해 10여 년 전 세워진 서울 한강에 있는 세빛섬(해안건축 작품)은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강을 즐기고 한강에 볼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물 위에 뜨는 인공 구조물로서 제작됐다. 여름에는 폭우로 인해 한강의 수위가 일정하지 않기에 로프를 이용해 물 위에 뜨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세빛섬은 기본적으로는 배 같은 건물인 셈이다.
멀리서 봤을 때 꽃잎을 겹쳐놓은 것 같은 세빛섬의 건물 모양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바라다보는 즐거움을 준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야간조명은 밤의 검은 강물과 대비되며 시각적 존재감을 드러낸다. 또한 세빛섬 안에는 연회장, 레스토랑, 카페 등 강물과 섬, 건물의 독특한 조합 위에서 즐길 수 있는 시설이 구비돼 있다. 건물이 섬을 차지하고 있기에 사람들은 강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떠 있는 건물 섬을 구경하거나, 아니면 섬 안에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강의 공터에 하나의 볼거리가 들어섰고, 활동을 진작시킬 수 있는 여가 공간들이 형성된 것이다.
바라다보던 강, 쉽게 접근되지 않는 흐르는 강 위에 주인공처럼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물을 통해 사람들은 선상에서의 파티나 경회루에서의 연회를 즐기는 것처럼 일상적 이벤트를 즐기고 여흥을 돋울 수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경관의 주인공은 누구여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비껴가는 것 같기도 하다.
리틀아일랜드는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비워진 장소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자연과 어우러진 동양적 문화의 건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빛섬은 어떤 공간일까. 강이라는 공간을 차지하며 그 안에서 즐거운 행위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해 자연이라는 대상과 그곳에 있는 건물,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생각이나 활동을 하고 있을 ‘사람’이라는 주체가 3박자를 이루며 만들어가는, 한국 현대사회가 반영된 한 폭의 풍경화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