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셋값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 가운데 전세에서 매매로 넘어가려는 수요가 머뭇거리고 있다. 여전히 집값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아직은 매매로 넘어갈 만큼 전셋값이 부담되지 않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고금리가 계속되면서 이자 부담이 여전하고 대출 규제 강화로 자금 조달이 쉽지 않다는 점도 매매로 선뜻 넘어가기 어려운 이유로 지목된다.
1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3월 전국주택가격동향 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32% 상승했다. 직전 달에는 0.22% 올랐는데 상승 폭이 더 커졌다. 올해 누적으로는 0.85% 올랐다.
구별로 살펴보면 누적 상승률은 더 높다. 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전달 넷째 주(22일) 기준 성동구 2.54%, 은평구 2.22%, 노원구 2.07% 등으로 전셋값 상승률이 2%가 넘어간 지역이 나왔다. 동대문구(1.79%), 동작구(1.69%), 용산구(1.68%) 등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서울 전셋값은 당분간 더 오를 전망이다. 우선 전세 물건이 많지 않다. 부동산 정보제공 앱(응용프로그램)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서울 전세 물건은 2만9782건으로 2022년 7월12일 2만9931건 이후로 약 2년 만에 다시 2만건대 진입했다. 연초 3만4822건보다도 5040건(14.47%) 급감한 수준이다. 앞으로 전셋값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돼 만기가 돌아온 세입자들이 새집을 찾기보다는 기존 전셋집에 재계약을 해서다.
예정된 입주 물량이 적은 점도 전셋값을 끌어올린다.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당장 5월엔 입주 물량이 하나도 없고, △6월 1299가구(강동구 길동) △7월 596가구(영등포구, 성북구, 구로구) △8월 1201가구(강북구, 영등포구) 등으로 하반기 예정된 물량은 5572가구에 불과하다. 서울 적정수요 4만6923가구에 크게 못 미친다.
통상 전셋값이 치솟을 때는 전세 수요가 매매로 넘어간다. '전셋집을 전전하느니 그 돈이면 집을 사는 게 낫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전셋값 상승 전망에도 실수요자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집값이 이전 급등기처럼 가파르게 뛸 것이란 기대감이 없기 때문이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지금 부동산 시장은 최고가 대비 약 40% 이상 하락한 급매물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라면서 "집을 사더라도 가파르게 치솟을 것이란 기대감이 없기 때문에 임차 시장에 머무르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집을 매수할 수 있는 수요층이 얇아졌다고도 판단했다. 김 수석위원은 "2021년 집값 급등기 부동산 매매 시장으로 2030세대가 상당히 많이 진입했다"며 "원래라면 집을 매수하지 않았을 수요가 패닉바잉(공황매수)으로 집을 사다 보니 현시점에 집을 살 실수요자가 없다. 미리 수요를 당겨서 소진했다"고 말했다.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르고는 있지만 아직 매매로 넘어갈 만큼 오르진 않았기 때문에 매매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셋값이 많이 올랐고 또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전셋값 전고점에 도달하려면 더 올라야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서울만 놓고 보면 매매가격 역시 연초 일부 회복하면서 여전히 매매가격과 전셋값의 격차가 커 수요자들이 임차 시장에서 매매 시장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리가 여전히 높고 대출 규제가 빡빡하다는 점도 집을 사기 어려운 배경이다. 송 대표는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짐에 따라 금리인하 역시 머뭇거리고 있는 터라 국내 금리 역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올해부터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 등으로 한도가 줄어 대출에 대한 부담이 커져 매수가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다만 전세수요가 매매수요로 이미 넘어가기 시작했다는 반론도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4058건을 기록해 4000건을 넘어섰다. 계약 이후 신고 기간이 월말까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거래량은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2022년과 2023년 2년 동안 거래 절벽 상황에서 쌓여 있던 급매물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상황"이라면서 "임차 시장에서 만기가 도래한 세입자 가운데 대출 한도나 이자 비용 등을 부담할 수 있는 세입자들이 매매로 넘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급매물이 얼마나 빠르게 소진되느냐에 따라서 서울 집값이 확실히 반등할 시점이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