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미우미우 2024 봄·여름(SS) 시즌 패션쇼'에선 클래식하고 캐주얼한 룩에 레트로한 안경을 매치한 패션이 화제가 됐다. 미우미우의 오발형 뿔테 '미우 리가드 안경'이 품절 대란을 일으켰고 빈티지한 안경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블랙핑크 제니와 로제, 아이브 장원영 등도 단정한 코디에 레트로 포인트 아이템을 착용한 패션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해 눈길을 끌었다.
단정하면서도 독특한 '긱시크(Geek Chic) 패션'이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 사이에서 새로운 대세 패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긱시크란 괴짜를 뜻하는 '긱(Geek)'과 세련됨을 의미하는 '시크(Chic)'의 합성어다. 클래식한 느낌을 강조하면서 화려한 장식보다 레트로한 안경과 넥타이 등 기본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주는 게 특징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올 초 국내외 패션 브랜드를 관통한 트렌드 중 하나로 긱시크가 떠올랐다. 20대 직장인 이다현 씨(27)는 최근 빈티지 안경과 1980~90년대 제작된 셔츠를 모으고 있다. 대학생 때만 해도 여성스러운 원피스를 즐겨 입었는다는 이 씨는 "겉보기엔 단정하면서도 개성 있는 아이템을 하나씩은 착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유명 아이돌도 긱시크룩을 연출해 화제가 됐다. 블랙핑크 제니는 최근 매쉬로 된 트랙탑과 초미니 기장의 컷오프 플리츠 스커트, 얇은 무테안경을 착용한 모습을 공개했다. 앞서 에스파 카리나도 공항 패션으로 링클 소재 민소매 셔츠, 카고 팬츠, 퍼 카라 코듀로이 재킷을 입고 무테안경을 착용해 긱시크 스타일을 선보였다.
이후 SNS 상에선 '제니 뿔테 안경', '카리나 무테안경' 등 수식어가 붙은 채 제품 정보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다. 인스타그램에는 '긱시크'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상당수다. 개성 있는 안경을 착용하거나 안경과 잘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을 위해 앞머리를 풍성하게 자른 모습을 공유했다. 여기에 셔츠, 배꼽티, 로우라이즈진 같은 복고풍 패션을 입는 등 다양한 형태의 긱시크룩이 유행하고 있다.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에 따르면 지난 1~15일 '긱시크' 검색량이 전월 동기 대비 80% 늘었고 '긱시크 안경' 검색량은 올 2월보다 490% 뛰었다. 특히 긱시크룩을 대표하는 의류, 패션 잡화 아이템 거래액은 급증했다. 지난달 기준 상품명에 '무테안경'이 포함된 상품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13배 이상(1235%), '체크 셔츠'가 포함된 상품 거래액도 12배 이상(1165%) 늘었다.
카카오스타일이 운영하는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지그재그에서도 지난달 긱시크 관련 상품 거래액이 작년 같은달과 비교해 급증했다. 긱시크룩의 포인트인 안경 거래액은 2배 이상 을었는데 특히 무테안경 검색량과 거래액은 각각 18배(1702%), 11배(1054%) 뛰었다. 남성 직장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넥타이도 긱시크 패션 아이템화돼 거래액이 63% 증가했다.
이에 업계는 안경부터 신발, 옷 등 긱시크 스타일을 위한 제품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LF 자회사 씨티닷츠의 밀레니얼 캐주얼 브랜드 던스트는 24 SS 컬렉션의 핵심 키워드로 긱시크를 내세웠다. 주력 아이템은 1980~1990년대 비행기 조종사들의 옷에서 영감을 받은 재킷을 재해석한 오버사이즈 빈티지 레더 블루종, 포멀과 캐주얼 룩에 모두 어울리는 부클 트위드 재킷, 던스트 시그니처 아이템인 로고 스웻셔츠 등이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오클리는 긱시크 패션의 핵심으로 금속 소재의 얇은 테 안경 '리자드'와 '소켓'을 내세웠다. 리자드는 스퀘어 타입의 티타늄 안경테로 가로는 길고, 세로는 짧은 직사각형 렌즈에 얇은 금속테 프레임을 더해 클래식한 느낌을 준다. 소켓은 가로가 긴 직사각형 프레임이 돋보이는 금속 안경테다. 얇은 금속테가 렌즈 전체를 감싼 풀프레임 제품으로, 세련되면서도 너드한 긱시크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패션기업 한세엠케이의 프리미엄 빈티지 데님 브랜드 버커루는 셔츠 아이템으로 긱시크 스타일을 제안했다. 빈티지한 색감에 체크 패턴, 크롭 및 오버핏 등 다양한 실루엣 연출이 가능해 레이어드 아이템으로 활용이 가능한 게 포인트.
업계는 긱시크 패션이 자유롭고 개성 있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성향과 맞물려 인기를 얻고 있다고 풀이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긱시크룩이라고 해서 꼭 셔츠를 입어야 하는 건 아니다. 의상 자체보다는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안경, 넥타이 등 잡화로 포인트를 주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