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중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지난 10일 22대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하면서 정책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에 퍼지자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자본시장 발전, 여야 초월 사안' 강조
이 원장은 15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금융산업위원회 초청 강연 '자본시장 대전환과 우리 기업·자본시장의 도약을 위한 발걸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총선은 개별 이벤트이지만 밸류업은 중장기적으로 국가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야할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밸류업이 어떤 내용으로 가닥이 잡힐지, 향후에도 추진이 될지 등에 대해 일각에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날 강의 참석자들에게도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 등을 꾸준히 추진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설명했다”고 했다.
이 원장은 “거시경제 상황과 금융환경 등을 고려할 때 이제는 부동산 시장의 수요를 촉발해 국가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가계 자산형성을 돕기는 어렵다”며 “(자본시장 활성화는) 과거 부동산에 주로 매여 있던 자원과 자산운용의 틀이 더욱 생산적인 방향으로 옮겨가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수차례 밸류업 프로그램이 여야를 초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자본시장을 발전시키자는 이야기에 대해선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며 “우리 세대나 우리의 자녀 세대들의 자산 형성, 노후 보장 등을 위해서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이견은) 방법론의 문제일 뿐”이라며 “대선 당시에도 각 정당이 자본시장 활성화 의견을 낸 바 있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다음달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투자설명회(IR)를 통해 해외 투자자들에게도 밸류업 등에 대한 설명을 할 것”이라며 “외환 제도나 자본 제도, 주주 보호 등을 알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금투세 등 세제, 공론화 기회 있을 것”
이 원장은 이날 총선 이후 세제 개편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했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능성에 대해선 ”세제당국이 따로 있다보니 제가 일방적으로 뭐라 말씀드릴 입장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어떻게 세금이 부과되는게 공정한지 이 기회에 공론화장에서 얘기해보는게 좋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발생한 이익에 대해 법인세 등 여러번 세금을 낸 뒤 개인에게 배당을 하는데, 이때 배당에 대해서도 과세를 하면 과제가 중복된다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있다”며 “과세가 아예 안되는 소득도 있는 만큼 전체적인 형평성을 같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이달 중 공매도와 밸류업 관련해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간담회와 설명회를 열 것”이라며 “개인투자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입법 주체들이 이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장기적으로 꾸준히 자본시장에 투자를 한 분들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간에 인센티브를 줘야 된다.”고도 언급했다. 이 원장은 “미국도 장기 간접 투자에 대한 강한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며 “자본시장에서 역할을 한 개인투자자들이 시장 전체의 생산력과 건강한 추세 형성에 도움을 준다는 의견도 있다”고 했다.
“주주환원 미비 기업 무조건 퇴출 아냐”
이 원장은 이날 '상장사 솎아내기'에 대한 방침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각 기업마다 사정이 있는 만큼 밸류업 등 주주환원 제고 요구에 대해 바로 응답하지 못하는 기업을 주식시장에서 퇴출하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원장은 “별다른 사업공시는 없이 불공정거래나 편법거래에 연루돼 단기간에 주가 급등락하고, 이 와중에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는 종목을 시장서 빼자는 것”이라며 “이런 종목은 전체 시장의 활력을 좀먹는 만큼 시장에서 빼내야할 필요가 있다고”고 했다.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경기 안산갑 국회의원 당선인의 편법대출 의혹에 대해선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 정책·시장관리 이슈로 본다“고 선을 그었다. 이 원장은 ”부동산을 통해 자산형성을 하려는 건강한 노력은 존중한다”며 “하지만 불법적 방법으로 자산을 취득해 차익을 낸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금융사도 이 과정에서 잘못한 것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금융사 등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현황에 대해선 "채산성이 안 맞는(낮은) 부동산이나 브릿지론은 주인이 바뀌는 게 적절하다는 게 대원칙”이라며 “이미 진행이 꽤 된 본PF나 사업성을 회복할 수 있는 사업장은 자금 공급을 전제로 구조조정을 병행하는 ‘투 트랙’으로 프레임을 짜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자금 공급 등에) 함께 노력하는 금융사에는 한시적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