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이스라엘에 직접 보복 공습을 벌이면서 국내외 증시 불확실성이 확 커진 분위기다. 중동 일대 지정학적 갈등은 여러 나라가 얽혀있는데다 세계 각 산업의 중심 자원인 원유 수급과도 직결돼서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중동 리스크가 증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 이스라엘에 보복 공습…“유가·금값 오를 것”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이란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국내외 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 중동 지역 분쟁은 원유의 수급 불안을 일으킬 수 있어 물가를 자극하고, 이때문에 금리 향배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이란은 현지시간 13일 밤 이스라엘에 무인기(드론)와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란은 지난 1일 시리아 내 이란 영사관이 폭격당하자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하고 보복을 공언해 왔다. 이번 사태로 중동 일대가 확전 중대 기로에 놓인 분위기다. 이란 외무부는 "필요하다면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방어 수단을 취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이스라엘에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전시 내각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중동 내 친이란 무장세력인 예멘 후티 반군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도 이란의 공격에 가세했다.
증권가에선 이미 상승세를 타고 있던 유가와 금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유가는 수급 불안 우려로 가격이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 비중을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원유 바닷길이 이란 영해를 지나서다.
이란은 앞서도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고 수차례 언급했다.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전날 호르무즈해협에서 이스라엘과 연관된 컨테이너 화물선을 나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길을 막거나 검문 절차 등을 주장한다면 그만큼 원유 이송에 차질이 생긴다.
밥 맥내리 라피단에너지 사장은 "현재 국제 원유 시장은 중동 분쟁에 따른 리스크 프리미엄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지 않다"며 "리스크 프리미엄을 더하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가볍게 돌파할 것"이라고 했다.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값도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 예상이 나온 지난 12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금 선물 근월물(6월물) 가격은 장중 트로이온스당 2440달러선까지 오르며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2400달러선을 돌파했다.
국내 증시 영향은…"체감경기 둔화 장기화 우려"
국내 증시 변동성도 높아질 전망이다. 일단 세계적으로 위험 회피 심리가 커지면서 강달러 현상이 더 심화하면 국내 증시의 외국인 수급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간 코스피지수는 상관계수 -0.8 수준으로 통상 달러 가치와 반대로 움직여왔다. 달러 가치가 오르면 80% 확률로 주가지수는 내렸다는 의미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국내 증시는 물가·금리·유가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아져 있다”고 지적했다.
유가도 증시 부담을 더할 수 있다. 국내 원유 수입량의 80% 이상을 중동산 원유가 차지한다. 중동산 원유 가격이 오르면 시차를 두고 생산자·소비자 물가도 오를 공산이 큰 이유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고유가에 따른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기업과 소비자의 체감경기 둔화가 장기화될 우려가 있다”며 “유가가 빠르게 하락하거나 중동 정세가 안정화되지 않는다면 미국의 금리 인하 스탠스도 조심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정유·해운·방산으로 리스크 헷지할 수 있어"
높아진 불확실성 속에서 오히려 유리할 수 있는 종목도 있다. 정유·해운·방산주가 대표적이다. 석유·정유 등 에너지업종은 유가가 오르면 판가를 올릴 수 있다. 산유국에서 원유를 사들여 국내로 들여오기까지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제품의 마진이 커지는 래깅효과도 볼 수 있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S-Oil, GS 등 에너지주는 높은 유가 수준이 유지될 경우 정제마진을 개선할 수 있어 실적 상향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해운주도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를 헷지할 수 있는 종목으로 꼽힌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물류 차질을 우려한 주요 기업들이 우회 노선을 택할 경우 해운 운임이 오를 수 있어서다.
증시에선 방산주가 수급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란과 이스라엘 간 갈등이 중동 일대로 확전할 가능성도 점쳐지면서 인접국들이 군수장비와 무기 등을 사들일 수 있어서다. 강진혁 연구원은 “중동 일대 안보 역량 강화 수요는 국내 업계에 기회요인이 될 수 있다”며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LIG넥스원 등 사우디아라비아 향 수출 기대감이 높은 기업들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