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간 발화 요인 다수가 '미상'
-'전기적 요인'도 구체적인 설명 부족
-전기차 화재 예방·대응 위한 데이터 쌓아야
많은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화재'에 대한 불안감이다. 스마트폰이 폭발했다는 사고만 봐도 제법 큰 불이 나는데 더 큰 배터리를 장착한 자동차에서 불이 난다니 지레 겁을 먹을 만도 하다. 더욱이 화재 진압 자체도 쉽지 않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며 공포감은 더 높아졌다.
사실 자동차는 언제든 불이 날 수 있다. 플라스틱이며 내장재와 전선, 피복 등은 모두 불이 붙기 좋은 물질이다. 인화물질도 많다. 내연기관 자동차라면 휘발유나 엔진오일일 수도, 고온의 배기가스 일 수 있다. 전기차라면 배터리가 원인일 수 있고, 전선에 흐르는 전기가 누전되며 발생할 수도 있다.
그간 자동차 화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건 연료 누출이다. 어딘가에서 새어나온 연료나 엔진오일이 뜨거운 자동차 부품과 만나 불이 붙는 원리다. 전기 합선은 어떨까. 자동차는 계속 진동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전선의 위치가 흐뜨러지거나 꺾이며 피복 내부가 노출되고 여기서 나온 전기가 낙엽 같은 이물질과 만나 불이 붙는다. 아주 드물게 철판과 스파크가 튀며 불이 발생하는 경우도 보고된다.
자동차에서 왜 불이 나는지를 이처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간 쌓여온 화재 사고 데이터 때문이다. 자동차 제조사 차원에서도 구체적인 원인을 터득하면 이에 대한 명확한 분석과 대처가 가능해진다.
문제는 전기차다. 전기차에서 불이 나는 이유는 내연기관만큼 뚜렷하게 특정되지 못한다. 배터리 양극과 음극이 접촉되며 내부 단락이 발생하는 결함 또는 외부 충격 정도로만 설명된다. 내연기관처럼 엔진룸 내부의 낙엽들을 주기적으로 제거하거나 뭔가가 새나오지는 않는지 점검할 수도 없는 일이다.
화재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점은 통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집계된 화재사고 121건 중 37건(30.5%)은 '원인 미상' 의 요인으로 발생한 사고였다. 의미 그대로 발화점 등 화재가 발생한 이유를 특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두 번째로 많았던 화재 사고 요인은 전기장치(29건,23.9%)에 의한 요인이다. 부주의(22건, 18.1%)와 교통사고(16건, 13.2%), 기타(8건, 6.6%), 기계(6건, 4.9%), 화학(2건, 1.6%), 제품 결함(1건, 0.8%)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딱 여기 까지다. 어떤 전기장치가 문제를 일으켰는지 화학적 요인은 무엇이었는지 등은 알 수 없다. 실제로도 전기차 화재사고 중 배터리의 유형에 따른 구분을 확인할 수 있는지를 문의했지만 이에 대한 세분화된 통계는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사고 차가 어떤 브랜드의 어떤 제품인지 알려주지 못하는 걸 차치하더라도 삼원계(NCM)인지 리튬인산철(LFP)인지 알 수도 없는 셈이다.
불이 났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소방청은 조금 더 세분화된 데이터를 쌓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며 화재 발생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자명하다. 원인을 규명하고 더 효율적인 진압 방식을 연구해내는건 온전히 방재 당국의 몫이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는 물론이거니와 전기차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신과 공포를 지워내는 데 필요한 일이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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