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스포츠 시즌이 한창입니다. KBO(한국프로야구)리그와 한국 프로축구 K리그가 개막했고, 지난달 메이저리그(MLB) 월드투어가 역대 최초로 서울에서 열렸지요. 2026 피파 북중미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손흥민과 이강인의 포옹 장면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포옹만큼 큰 화제가 ‘중계 사고’입니다. 올해부터 온라인으로 KBO리그를 독점 중계하는 CJ ENM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에서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9일 첫 시범 경기에서 야구 용어 ‘세이프(safe)’를 ‘세이브’로, 선수 등번호를 타순으로 착각해 표기하는가 하면 경기 중 송출이 중단되기도 했지요. 최주희 티빙 대표가 “중계 서비스가 미흡했다”며 사과했지만 야구 팬들의 거센 지탄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티빙은 드라마와 예능 등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 OTT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스포츠 중계에 뛰어들어서 욕을 먹는 걸까요.
스포츠 열풍 부는 OTT
티빙은 KBO와 올해부터 2026년까지 3년간 KBO리그 뉴미디어 중계권 사업 계약을 맺었습니다. 계약 규모는 총 1350억원, 연 450억원입니다.계약 규모에 비해 준비 기간은 촉박했습니다. 지난 1월 티빙이 중계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CJ ENM과 KBO가 최종 합의한 게 2월이었으니까요. 중계권자로 확정된 지 약 3주 만에 첫 중계를 한 거죠.
경쟁 OTT 쿠팡플레이가 스포츠 중계를 바탕으로 급성장하며 압박이 컸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옵니다. 쿠팡은 2020년 쿠팡플레이 출시 초기부터 스포츠 중계권을 적극적으로 가져왔습니다. K리그 전 경기와 AFC 카타르 아시안컵 같은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를 중계하며 경험을 쌓았고, 쿠팡플레이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토트넘, 멘체스터시티, 파리 생제르맹 같은 세계 명문 구단들의 방한을 추진했습니다. 올 여름에는 김민재 선수가 있는 바이에른 뮌헨이 처음으로 한국에 옵니다.
이번에 서울에서 최초로 열린 MLB 월드투어도 쿠팡이 주최하고 중계했지요. 쿠팡의 타깃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김하성 선수였는데, 오타니 선수가 LA다저스로 오면서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OTT 안 보던 스포츠 팬들이 온다
국내 OTT 시장은 사실상 2위 싸움입니다. 넷플릭스가 점유율 36%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한 가운데 티빙과 웨이브, 쿠팡플레이가 경쟁해왔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쿠팡플레이가 티빙과 웨이브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습니다. ‘스포츠의 힘’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OTT 입장에서 보면 스포츠는 가성비 넘치는 콘텐츠입니다. 중계권이 비싸지만, 한 번 가져오면 야구·축구 시즌 내내 구독자들을 붙잡아둘 수 있습니다. 특히 야구는 구단 팬들이 많아 충성 시청자들이 유입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 위주의 라인업으로 여성 구독자들이 많은 OTT들은 스포츠 중계권으로 남성 팬들을 새로 확보하기도 하지요.
CJ ENM의 디지털 마케팅 기업 메조미디어가 주 2회 이상 OTT를 시청하는 48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10명 중 53%가 “실시간 스포츠 중계가 OTT 구독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쿠팡플레이를 이용하려면 쿠팡의 유료 멤버십 로켓와우에 가입해야 합니다. 지난해 말 기준 쿠팡 와우회원 수는 1400만명으로, 1년 만에 300만명 증가했습니다. 쿠팡플레이 효과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또 MLB 월드투어에선 중계에서 한 발짝 나아가 티켓 판매까지 하면서 사업 확장의 가능성도 보여줬습니다.
티빙은 2020년 10월 CJ ENM에서 분할한 후 영업적자가 매년 심화하고 있습니다. TVN과 엠넷 등 CJ ENM의 TV 채널들, 영화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와 작품들을 공유하는 ‘원 소스 멀티유즈’를 하는데도 실적이 저조하다면 예능이랑 드라마, 영화로는 흑자전환이 어렵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다만 티빙도 KBO리그 중계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최근 앱 분석 서비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26일까지 안드로이드와 iOS의 OTT 앱 일간 활성 이용자(DAU) 평균치 기준으로 티빙은 162만7000명. 전년 평균(132만8000명)보다 22.5% 증가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OTT들이 스포츠 중계를 차세대 먹거리로 점찍었습니다. 유튜브가 MLB와 미국프로풋볼리그(NFL)를 중계하고 있고요. 미국 프로축구(MSL) 중계권은 애플TV가 가져갔습니다. 넷플릭스는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의 인기 레슬링 프로그램 ‘로’를 10년 동안 독점 중계하는 권리를 따냈습니다.
스포츠, 이제 돈 내고 봐야 한다
OTT의 스포츠 중계권 확보 경쟁이 의미하는 것은 ‘스포츠의 유료화’입니다. 그간 네이버, 다음 등 포털에서 무료로 볼 수 있었던 경기들을 앞으로는 돈을 내고 봐야 합니다. 티빙은 이달까지 무료로 KBO 중계를 하지만, 다음달부터는 멤버십 구독자들만 중계를 볼 수 있습니다. 티빙은 새 구독자들을 유치하려 최저가인 5500원짜리 요금제를 새로 출시했습니다.스포츠의 유료화는 점점 확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OTT들의 중계권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 중계권 가격은 높아질 테니까요. OTT들은 비싼 돈을 지불한 만큼은 수익을 거둬야겠지요.
미국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디즈니 채널 ESPN과 워너브라더스, 폭스는 최근 손을 잡고 통합 스포츠 스트리밍 플랫폼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스포츠 중계권이 치솟았기 때문인데요. 미국프로농구(NBA)만 해도 향후 10년 중계권 값으로 780억달러(약 105조원)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OTT들이 저렴한 광고 요금제로 새 구독자들을 유치할 것이라는 관측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지난해 넷플릭스가 계정 공유 단속과 광고 요금제 출시를 병행하며 실적을 개선한 선례를 따라가자는 거죠. 티빙도 KBO 중계에 맞춰 최저가인 5500원짜리 요금제를 새로 출시했습니다. 다만 스포츠 팬들이 원하는 수준의 중계 품질을 맞추려면 인프라 투자도 필수일 겁니다.
기획·진행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촬영 황우정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편집 박수영 PD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