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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 뜬 평화의 오로라…헝가리 거장의 마지막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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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미(식), 자(연).

남도의 진정한 ‘음미자’가 되기 위해 위 세 가지만 ‘단디’ 챙기기로 했다. 도다리쑥국의 조화, 충무김밥의 파격, 멸치회무침의 자극, 굴밥의 포용…. 한나절 미뢰(味)로 길어 올린 감각의 총화는 저녁 음악당에서 청각과 버무려져 한산대첩의 승리, ‘다찌’의 축제로 갈무리됐다.

통영 시내로 들어서자 진작에 피어 조용히 흐드러진 연분홍 벚꽃의 손짓 마중이 설렘으로 다가왔다. 제22회 통영국제음악제(3월 29일~4월 7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는 올해 판소리 적벽가(김일구 명창), 상주 작곡가 페테르 외트뵈시(1944~2024)의 현대작품까지 동서고금의 방대한 스펙트럼을 가로지른다.
○‘밴쿠버 인터컬처럴’ 청각적 용광로

지난 1일 저녁, 음악당 내 블랙박스 무대에 오른 ‘밴쿠버 인터컬처럴 오케스트라’는 이 거대한 청각적 용광로의 축약판을 보여줬다. ‘inter-cultural’이라는 이름처럼 문화권 사이의 경계를 독창적으로 허문 편성과 악곡이 돋보였다. 편제부터 낯설었다. 가히 ‘인터컬처’의 학익진이랄까. 왼쪽부터 차례로 솅(중국식 생황), 플루트, 클라리넷, 우드, 타르, 산투르, 비올라, 얼후가 도열하고 뒤에는 멀티 퍼커션이 포진했다.

중국 악기 솅과 얼후가 왼쪽과 오른쪽 끝을 만두 끝처럼 오므렸겠다. 그 안쪽으로는 서구의 관현악기(플루트, 클라리넷, 비올라)가 늘어섰다. 한가운데는 마치 이 괴팍한 악단에 특파된 중재자들처럼 중동 악기군(우드, 타르, 산투르)이 도톰하게 연결했으니 편제부터가 웅숭깊다.

파르시드 사만다리부터 마르크 아르마니니까지 6명의 ‘인터컬처럴 작곡가’들의 작품이 이날 레퍼토리. 첫 곡 ‘새 봄의 첫 꽃이 눈 속에서 깨어나면’(리타 우에다·이하 작곡가명)부터 귀를 단단히 사로잡았다.

연주는 마른 가지에 움이 트고 마침내 꽃봉오리를 피워내는 과정을 초고속 카메라가 아닌 악기라는 붓을 들고 시간의 축 위에 획으로 펼쳐내는 듯했다. 타악기는 물론이고 비올라, 얼후까지 가세한 단속적인 스타카토가 태동하듯 몇 차례 움찔되자, 곧 솅이 합세해 그 원초적 미분음들을 조금씩 조금씩 조심스레 조화로운 화성으로 분광해냈다.

공연 내내 조용한 활약을 보인 것은 중동의 류트족 악기 타르와 덜시머계 악기 산투르. 이들의 트레몰로는 중재자답게 동서양 관현악과 타악을 가만히 보듬는 특급 조연이었다. 조스캥 데프레풍(風)의 고전적 캔버스에 다문화의 팔레트를 갖다 댄 ‘시간의 애가’(파르시드 사만다리)를 비롯해 이어진 6곡은 문화의 ‘퓨전’에 그치지 않고 현대음악적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인터컬처럴’ 작품들의 탄생에 영감을 줄 만한 구성이었다.
○외트뵈시 헌정과 추모의 ‘오로라’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 작곡가인 외트뵈시의 24일 별세는 의도치 않게 이번 축제를 깊은 헌정과 추모의 장으로도 변모시켰다. 고인의 2019년작 ‘오로라’는 2일 저녁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였다. 파스칼 로페가 지휘하는 홍콩신포니에타와 더블베이스 주자 매슈 맥도널드의 협연. ‘오로라’는 외트뵈시가 실제로 여객기를 타고 1971년 알래스카 상공을 지나다가 목격한 오로라의 강렬한 인상을 음악으로 재현하려 애쓴 작품이다.

지휘자 왼편에 자리한 더블베이스의 위용도 대단했지만 악단 양 끝에 배치한 두 대의 더블베이스와 시간 차를 두고 벌이는 상호작용은 시각적으로도 재미났다. 피치카토와 글리산도, 초저음과 고음과 배음을 오가는 더블베이스의 광활한 질주는 북극광의 변덕스러운 아름다움을 소묘해냈다. 관현악과 더블베이스군이 서로 리듬과 화성의 도킹과 이탈을 반복하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역시 아시아 초연이었던 외트뵈시의 ‘응답’에서는 앙투안 타메스티의 비올라 협연이 고인의 생전 스케치 위로 명장면을 이어갔다. 이어 그가 앙코르를 겸한 짧은 추모곡으로 택한 것은 외트뵈시의 고국인 헝가리가 낳은 작곡가 죄르지 쿠르타그의 비올라 독주곡 ‘사인, 게임, 그리고 메시지’. 앞서 매슈 맥도널드도 ‘오로라’를 마친 뒤 추모의 의미를 담아 역시 헝가리 출신인 코다이 졸탄의 ‘에피그램’을 붙였다.

통영=임희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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