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업체 A사는 2022년 유럽연합(EU) 국가에서 전기자동차를 수입하면서 관세를 내지 않았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관세를 면제받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A사가 들여온 전기자동차는 FTA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전기자동차에 들어간 부품 중 제3국에서 만들어진 비중이 기준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관세청은 A사가 내지 않은 세금 43억원에 가산세를 더한 금액을 추징했다.
FTA에 따라 물품을 수입하고 있는 업체 상당수가 FTA 규정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FTA 규정을 위반했다 부과된 추징금을 감당하지 못해 도산하는 기업도 생기고 있다.
2일 세관당국에 따르면 관세청이 2019~2023년 FTA를 활용해 해외에서 한국으로 물건을 들여오는 수입업체 가운데 검증대상 2713곳을 조사한 결과 1371곳(50.5%)이 규정 위반으로 적발됐다. FTA 원산지 규정을 어기거나 품목 분류를 허위로 기재한 경우가 많았다.
전문가들은 관세청에 적발되지 않은 규정 위반 사례가 많다고 보고 있다. 관세청이 규정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비중이 전체 수출입 물량의 0.2%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면 FTA 국가와 수출입 물량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2004년 4월 국내 첫 FTA인 한·칠레 FTA가 발효된 이후 20년간 FTA를 체결한 국가는 59개국으로 늘었다. 현재 한국 수출입 물량의 약 80%가 FTA를 체결한 국가 간에 발생하고 있다.
FTA 규정을 위반한 업체는 과거 수입신고 내역을 바탕으로 최대 5년 치 이상의 추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자본이 적은 중소기업 중에 거액의 추징금을 감당하지 못해 도산하는 일도 있다”고 전했다.
FTA 규정 위반이 적발되면 해외 세관당국이 부여하는 특혜도 사라질 수 있다. 이진희 관세청 국제관세협력국장은 “미리 정한 조건을 지키면서 자유롭게 무역하는 것이 FTA 제도”라며 “관련 규정을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은 기업은 큰 손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