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 03일 08:0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치과 구강스캐너 기업 메디트의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매출은 반토막이 나고,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사모펀드(PEF)를 운용하는 MBK파트너스와 UCK파트너스가 손잡고 지난해 경영권을 인수한 직후 받은 첫 성적표다.
글로벌 제품 판매 딜러망을 재편하는 과정이 지연되면서 불가피하게 단기 실적이 하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단계 높은 성장을 위한 구조적인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예상보다 실적 악화의 폭이 커 투자업계에서도 적잖이 놀라는 분위기다.
딜러망 재편 지연이 실적 악화로 이어져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메디트는 지난해 126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2715억원) 대비 절반 수준으로 매출이 급감했다. 영업손실은 366억원에 달했다. 순손실은 273억원을 기록했다. 2022년 영업이익 1427억원, 순이익 1134억원을 거뒀던 것과 비교하면 실적이 큰 폭으로 후퇴한 것이다. 메디트의 매출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반적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의 매출은 190억원으로 전년(656억원) 대비 3분의 1토막 났다. 유럽(874억→406억원)과 아시아(481억→248억원)에선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 국내에서도 매출이 36% 감소했다.
실적 악화의 가장 큰 원인은 딜러망 재편이다. 구강스캐너를 비롯해 치과 의료기기는 보통 중간 도매상 역할을 하는 딜러를 통해 실수요자인 치과병원에 공급된다. MBK파트너스는 메디트 인수를 마무리한 직후부터 한국뿐 아니라 중국, 미국, 유럽 등에서 딜러망을 재편하는 작업을 했다. 중·소형 딜러들과의 거래를 정리하고, 대형 딜러 위주로 딜러망을 다시 구축했다.
딜러들에 대한 판매 정책도 강화했다. 판매 권장 가격 정책을 어기고 덤핑 판매를 하는 딜러는 과감하게 쳐냈다. 최대 12개월에 걸쳐 느슨하게 받던 상품 판매 대금도 3개월 내에 받도록 정책을 바꿨다. 딜러망에 따라 판매 성과가 달라지는 만큼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딜러망 재편 과정이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중·소형 딜러들을 쳐낸 속도만큼 빠르게 신규 대형 딜러를 확보하지 못했다. 새롭게 구축한 대형 딜러들에게도 현지 조직 구축 지연으로 상품 설명과 교육 등을 완벽하게 하지 못해 판매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딜러들이 고금리 여파로 상품 발주를 보수적으로 한 것도 메디트의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지난해 메디트가 신제품을 내놓지 않으면서 수요가 줄어든 영향도 있다. 중국에선 상품 인증이 지연되는 악재까지 겹쳤다.
치과 의료기기 업계 관계자는 "중·소형 딜러에서 대형 딜러 중심으로 딜러망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공백이 생긴 데다 고금리 여파까지 겹치며 메디트가 실적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일회성 비용도 발목 잡아
일회성 비용이 대거 반영돼 판매비 및 관리비가 크게 늘어난 것도 실적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2022년 611억원이었던 메디트의 판관비는 지난해 1257억원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메디트는 지난해 주식보상비용으로만 368억원을 썼다. 메디트 임직원들에게 부여된 스톡옵션을 현금으로 정산해주면서 발생한 비용이다.지급수수료로는 238억원을 지출했다. 인수 후 통합(PMI) 과정에서 글로벌 컨설팅회사에 자문을 받고, 덴마크 경쟁사와의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 변호사 등을 선임하면서 발생한 비용이다. 메디트 관계자는 "소송은 승리로 끝났고, 임직원에게 지급한 스톡옵션도 모두 정리했다"고 말했다.
메디트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실적은 악화됐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리테일 실적은 더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메디트 관계자는 "지난해 중간 도매상에게 판매한 물량은 줄었지만, 최종 고객 실수요 지표인 구강스캐너 설치 수는 전년 대비 10% 이상 늘었다"며 "딜러망 재편 이슈로 재무제표에 나타나는 숫자가 악화됐을 뿐 메디트 제품 수요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디트는 장민호 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가 2009년 창업한 회사다. 구강스캐너 시장에서 메디트의 시장 점유율은 글로벌 3위 수준이다. UCK파트너스가 2019년 말 메디트 지분 50%+1주를 약 3200억원에 인수했다.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이 회사 지분 99.5%를 약 2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장 교수 등 창업자와 특수관계인은 지분 매각 후 재투자를 통해 지분 약 30%를 다시 확보하며 공동 투자자로 참여했다. UCK파트너스도 경영권 매각 후 창업자와 특수관계인으로부터 지분을 사들여 현재 메디트 지분을 약 17% 보유하고 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