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3월 20일 11:4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성장성 특례 상장을 활용해 증시에 입성하는 기업이 급감했다. 앞서 상장한 기업 상당수가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등 부실기업 징후를 보이자 상장 예비기업, 주관사, 한국거래소 모두 신중해진 결과다.
성과를 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기업에 자금 조달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와 달리 자격 미달 기업의 상장 통로란 부정적 이미지가 부각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발길 끊긴 성장성 특례 IPO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성장성 특례 상장 제도를 통해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는 기업은 없다. 2018년 셀리버리를 시작으로 2019년 5곳, 2020년 7곳, 2021년 5곳 등이 성장성 특례를 활용해 상장했다. 하지만 2022년과 2023년엔 각각 1곳에 그친 데 이어 지난해 7월 이후 발길이 끊겼다.성장성 특례 제도는 적자 기업이라도 주관사의 추천만으로 상장할 수 있도록 상장 요건을 완화해주는 제도로 2017년 1월 도입됐다. 주관사 ‘보증’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코스닥 특례 상장 제도 가운데 심사 문턱이 가장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대신 상장 이후 6개월간 주가 흐름이 부진하면 주관사가 공모가의 90% 가격으로 매입해야 하는 환매청구권(풋백옵션)을 짊어진다.
앞서 이 제도로 증시에 입성한 기업이 대부분 부실 위기에 빠지면서 해당 제도에 대한 신뢰가 저하된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까지 20곳이 성장성 특례로 증시에 입성했지만, 상장 이후 흑자를 한 번이라도 낸 건 6곳에 불과하다. 대부분 상장 당시엔 1~3년 내 흑자 전환을 약속했지만, 상장 이후 오히려 적자 폭이 확대된 곳이 대다수다.
적자가 누적되면서 다수 기업이 경영난에 빠졌다. 성장성 특례 상장 1호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셀리버리(신약 개발)는 지난해 3월 감사보고서 의견거절을 받은 데 이어 올해 자본전액잠식에 빠지며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다. 경영진 해임을 요구하는 소액주주 연대와 갈등을 빚으며 올 3월 주총이 파행되기도 했다.
올리패스(신약 개발)도 자본잠식률이 50%를 초과해 올해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지난해 말부터 유상증자 및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해 400억원을 조달하려 했으나 7차례 지연되며 한국거래소로부터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앞서 CB 등을 발행해 운영자금을 마련했던 기업들은 이를 상환하기 위한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주주들의 애만 타고 있다. 알체라(인공지능 영상인식)는 지난해 9월부터 57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추진했으나, 올해 2월 결국 철회했다.
성장성 특례로 상장한 20개 기업의 주가를 살펴보면 공모가보다 높은 곳은 레인보우로보틱스(협동 로봇)와 와이랩(웹툰) 두 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18개 기업의 주가는 공모가 대비 평균 61.2% 낮은 수준이다.
"장점 없다" 다른 특례 제도로 선회
IB 업계에선 제도 도입 취지와 달리 한국거래소의 성장성 특례 심사 기준이 다른 특례와 비슷한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증권사 IPO 본부장은 “선례를 지켜본 한국거래소가 상장 적격성이 부족한 기업이 성장성 특례를 활용했던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며 “최근에는 단순히 증권사의 보증만으로 증시에 입성시키지 않겠단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에 굳이 성장성 특례 상장 제도를 활용할 유인이 떨어졌다. IPO 기업은 부정적 이미지를 달고 증시에 입성할 이유가 없는 만큼 다른 특례 제도를 원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주관사 입장에서도 기술성 특례나 이익미실현 특례(테슬라 요건) 등으로 진행하는 게 풋백옵션 부담 등이 덜하다.
다른 IB 관계자는 “다른 특례로 상장하면서 자발적 풋백옵션을 제시하는 게 오히려 모양새가 좋다”며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나 현실적으로 성장성 특례 제도는 계륵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