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이 왜 이렇게 많아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 12월 부산 한 재래시장을 방문했다가 자신을 찍는 수많은 휴대폰을 보며 이 같이 말했다. 결국 삼성전자는 작년 애플에 글로벌 스마트폰 1위 자리를 내줬다. 스마트폰 시대 개막 직후 노키아·모토로라를 무너뜨리고 세계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던 삼성이 최고 타이틀을 13년 만에 경쟁사에 넘겨준 것이다.
업계에선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는 반응이 흘러나왔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스마트폰 성장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지 오래다. 특히 고가 제품군에선 애플에 밀리고 중저가 시장에선 중국 업체들에 쫓기면서 '넛 크래커(nut-cracker·선진국에 기술과 품질 경쟁에서, 개도국엔 가격 경쟁에서 밀리는 현상)' 신세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 제품을 강화하는 등 차별화를 통해 선점 효과를 노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회의 땅' 아프리카 장악…트랜션 세계 5위 껑충
29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지난해는 지각변동의 해였다. 애플이 스마트폰 출하량에서 삼성전자를 추월해 세계 1위에 올라섰기 때문. 2007년 아이폰 공개 후 처음이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애플은 전년 대비 3.7% 증가한 2억3460만대를 출하해 점유율 20.1%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출하량이 13.6% 감소한 2억2660만대에 그쳐 2위(19.4%)로 내려앉았다. 그 뒤로는 샤오미·오포·트랜션 등 중국 업체들이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트랜션은 출하량이 1년새 약 30% 증가하는 고성장세를 보였다.
업계에선 삼성이 지난해 애플에 1위 자리를 내준 요인으로 중국 제조사들의 중저가 시장 약진을 꼽는다. 특히 아프리카·중남미·인도 등 신흥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이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삼성의 점유율을 빼앗아갔다. 트랜션의 경우 스마트폰 성장이 전반적으로 둔화한 가운데 나홀로 30%대 성장하며 세계 5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2006년 설립된 이 업체는 '테크노(Tecno)', '인피닉스(Infinix)', '아이텔(Itel)' 등 초저가형 스마트폰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스마트폰 한 대당 평균판매가격(ASP)이 90달러(약 13만원)에 불과해 중저가 수요가 높은 아프리카 시장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삼성이 우세였던 중남미 시장도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삼성 스마트폰은 지난해 4분기 중남미 시장에서 9년 만에 점유율이 30% 밑으로 떨어졌다. 연간 점유율도 32%로 전년(2022년·38%) 대비 6%포인트 하락했다. 삼성전자의 빠진 점유율은 중국 업체들이 가져갔다. 트랜션은 4%포인트, 샤오미는 1%포인트 점유율이 증가했다. 상위 2~4위 업체는 모두 중국 제조사로 이들의 합산 점유율은 44%에 달한다. 중국 업체들 가운데 샤오미·화웨이가 고급 라인을 강화하며 갤럭시S 또는 Z시리즈와 경쟁한다면 트랜션은 저가 A시리즈 시장을 잠식해 들어오는 것이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중국 스마트폰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자체 기술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며 "제품 가격경쟁력은 성공의 중요 요인으로, 시장 진입 초기 단계부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워 소비자 부담을 낮췄다"고 짚었다.
"AI폰은 중국이 세계 최초"…앞다퉈 신형폰 출시
올 초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공세적으로 신제품을 출시했다. 삼성전자의 AI 폰 '갤럭시S24' 공개(현지시간 1월17일) 직전에 오포·아너·비보 등 후발주자가 앞다퉈 AI 기능을 탑재한 신형 폰을 선보였다. 갤럭시S24 시리즈보단 기술력이 떨어지지만 게임체인저로 꼽히는 AI 폰을 선제 공개했다는 점에서 '집중 견제' 전략을 엿볼 수 있다.오포는 올해 1월8일 AI 폰 '파인드 X7'를 공개했고, 사흘 뒤(11일)엔 아너도 AI를 적용한 '매직6' 시리즈를 내놨다. 특히 '매직6 프로'는 시선 만으로 자동차 문을 열 수 있는 등 다양한 AI 기능을 선보여 올해 2월 말 세계 최대 통신·모바일 박람회 '모바일월드 콩그레스(MWC) 2024'에서 관심을 받았다. 이어 이틀 뒤(13일)엔 비보 역시 AI폰 '비보S18 프로'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인도 시장에는 또 다른 AI 폰 'X100프로'를 내놓았다.
샤오미는 'MWC 2024' 개막 하루 전 스페인 현지에서 새로운 AI 폰 '샤오미14 울트라'를 공개했다. 지난해 출시한 샤오미14 시리즈의 최상위 제품으로 사진의 배경을 생성하거나 일부를 삭제하는 기능을 적용했다. 갤럭시S24의 새로운 AI 사진 편집 기능과 유사하다. 그간 중국은 외산 브랜드 진입을 막고 거대 내수시장 기반으로 기술 자립을 강화해 왔는데, 최근엔 상당수 분야 기술적 수준이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도 손색 없을 만큼 올라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화웨이는 올 상반기 세계 최초로 두 번 접는 '트리폴드폰' 출시에 나선다. 지난해 미국 제재 속에 7㎚(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을 적용한 5G폰 '메이트60 프로' 출시에 이어 올해 또 다시 새 제품으로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MWC24 퀄컴 전시장에 샤오미14프로, 아너 매직6프로 등 중국 스마트폰 협력 사례도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삼성이 갤럭시S24에서 퀄컴 AI 프로세서와 구글 제미나이 및 AI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앞서가고는 있지만, 경쟁 스마트폰 업체들도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최근 스마트폰 칩셋 시장에서 대만 미디어텍의 경쟁력이 커지고 있다. 주로 중국 중저가폰에 많이 쓰이는데 온디바이스AI에도 많이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점유율 위태로운 삼성…14억 인도시장에 사활
삼성전자는 최근 인도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14억 인구의 인도 시장은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스마트폰 시장으로 성장잠재력이 높다. 중국 기업 역시 프리미엄 위주인 유럽이나 미국 시장보다 진출하기 쉬워 '놓쳐서는 안 될 시장'으로 삼고 있다. 이미 샤오미 등 중국 기업들은 2014년부터 인도 시장에 진출해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을 공략했다.
인도 시장 역시 녹록지 않은 상황이란 얘기다. 중저가 스마트폰 수요가 주를 이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중국 제조사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지난달 인도 시장 스마트폰 점유율 1위는 샤오미(20.81%)였고 비보(18.23%)와 리얼미(13.91%)가 뒤를 이었다. 삼성전자는 4위(13.49%)를 달리고 있다. 현지 시장은 삼성전자와 8위 애플(3.9%)를 제외하면 상위 10위가 모두 중국 업체들이다.
지난해 삼성은 2017년 이후 6년 만에 인도에서 스마트폰 1위(출하량 기준 점유율 18%)를 탈환했으나 마냥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표상 1위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슬아슬하다. 1년새 삼성전자 점유율은 되레 1.4%포인트 떨어진 데 비해 같은 기간 성장세인 중국 비보(점유율 17%)는 1%포인트 격차로 바짝 뒤쫓고 있다. 점유율 변동성이 상당히 높은 시장이다.
노태문 삼성전자 MX(모바일경험)사업부장이 올해 1월 갤럭시S24 언팩 직후 인도로 달려간 것은 이런 위기의식과 무관치 않다. 삼성전자 최초의 AI 폰을 선보이고 첫 해외 간담회를 개최할 곳으로 인도를 택한 것은 삼성전자가 이 시장을 상당히 중요시한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인도 시장은 특히 최근 저가에서 프리미엄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어 스마트폰 '투트랙 전략'을 효과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시장이란 판단이다.
삼성전자가 올해 선제적으로 출시한 AI폰으로 다시 글로벌 스마트폰 1위를 탈환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김용석 교수는 "프리미엄 시장은 애플이 꽉 잡고 있고 중저가 시장은 중국 업체들이 대거 포진해 있어 삼성전자가 끼어들 틈이 없는 상황"이라며 "저가는 중국이 이미 삼성 저가폰을 능가하고 있다. 중국이 기술은 물론이고 재료비·물류·유통·구매 등 모든 환경에서 조금 앞서 있다"고 말했다.
다만 AI 시대가 '기회'가 될 것이란 점에 주목했다. "온디바이스AI를 이용한 스마트폰 생성형 AI와 실시간 통역 기능 등 애플이 개척하지 않는 분야를 찾아 선점하는 전략을 펼쳐야 한다. 온디바이스 AI 시대가 삼성에게는 절호의 기회"라면서 "갤럭시 S24 시리즈를 발판으로 'AI 폰은 삼성'이라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애플보다 앞선 AI 기능으로 스마트폰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갤럭시 폴더블폰에도 AI를 탑재하면 애플과 확실히 차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삼성의 자체 AP '엑시노스'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 NPU(AI 코어) 성능을 높이는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 결국 NPU에서 AI 성능의 차별화를 가져올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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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