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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 주고 집도 줄게"…'젊은 인재' 싹 쓸어가는 중국 [중국산 대공습 현장을 가다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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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반도체 설계 기술자들을 제일 선호합니다." 이공계 전문 10년 경력의 한 헤드헌터(인재 스카우트)는 "올해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기업 출신 기술자 몇 명이 중국으로 넘어갔다. 예전엔 기존 연봉의 10배씩 얹어주며 '임원급'을 모셔갔다면 최근엔 연봉 200만위안(약 3억7000만원) 정도 주고 5~10년차 수준 젊은 인재들을 선호하는 추세"라면서 "무조건 한국에서 받는 것보단 많이 제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그들(중국 반도체 회사)도 '동종업계 취업제한' 같은 국내 실정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에 법적 문제가 없는 기술자를 추천해달라고 하거나, 원할 경우 우선 반도체와 관련이 없는 컨설팅 회사로 입사시킨 뒤 일정 기간이 지나서 반도체 회사로 옮기는 방식의 '꼼수'를 제안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국내 대기업 임원 승진에 실패한 차·부장급 기술자가 이 같은 유혹에 흔들려 중국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반도체 전쟁'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의 '아킬레스건'은 인재다. 후발주자로서의 기술적 한계를 단기간에 극복하기 위해 파격 혜택을 내세워 전세계 인재들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국으로의 반도체 첨단장비 반입을 차단하는 것 자체가 위기를 느낀다는 신호"며 "제재 초기엔 중국이 받는 타격이 컸지만 막대한 지원금과 거대한 내수시장 기반으로 반도체 기술 격차를 턱밑까지 추격했거나 일부는 추월한 상태"라고 입을 모았다. 당장 중국 수요 비중이 상당한 국내 반도체 산업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20억 주고 집도 줄게"...'반도체 풀뿌리 인재' 키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초 중국 대표적 싱크탱크 중국과학원 반도체 연구소는 '우수 청년 과학 청년 기금(펀드)' 프로그램 지원자를 모집했다. 이 펀드는 중국 과학기술부가 관리하는 국가자연과학재단(NSFC)이 해외 우수 인재를 중국으로 유치하는 목적으로 조성된 기금이다.

해외 대학·연구개발 기관·기업연구소 등에서 일정 기간 근무가 조건이며 특히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경우 우대한다. 대우는 교수로 근무하며 3년간 최대 총 20억원의 지원금을 받는다. 연구비 900만위안(약 16억5000만원)에 75만위안(약 1억3000만원)의 연봉이 책정됐다. 이밖에도 생활비 100만위안(약 1억8000만원)과 특별 보조금 150만위안(2억8000만원)을 챙겨준다. 사무실과 주택도 제공하며 베이징에서 자녀 학교 입학도 지원한다. 프로그램마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배우자의 구직 활동까지 지원해주곤 한다.


대상자는 40대 미만(1984년 출생 이후)으로, 젊은 인재에 타깃팅한 게 특징이다. 과거에는 '천인계획(정부 주도로 세계적 인재 1000명 유치 전략)'으로 세계적 학자를 유치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엔 두각을 드러낼 것으로 보이는 유망 인재를 선제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천인계획에 대해 국제사회가 '산업 스파이 양산 프로그램'이란 비판이 나오자 젊은 인재를 처음부터 포섭해 중국에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전략으로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베이징 소재 명문대 이공계학과 교수 이모 씨는 "10여년 전만 해도 박사 졸업생들은 중국 반도체 회사보다 대부분 미국 회사 취직을 원했는데 연봉이 뛰면서 지금은 중국 내 반도체 회사 취업을 선호하고 있다. 정말 시대가 많이 바뀐 것 같다"고 전했다. 중국 리에핀빅데이터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베이징 반도체 업계 평균 연봉은 30만위안(약 5500만원)으로, 중국의 지난해 1인당 연평균 소득 3만9218위안(약 740만원)의 7배가 넘는다.
'독' 아닌 '약' 된 미국 제재…"2030년엔 반도체 70% 자립"

중국 정부와 기업, 학계 등 전방위적 인재 러브콜은 심화하는 미국 반도체 제재의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특성상 미세공정이 필요한 데다 비용이 많이 들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숙련된 기술자가 필수적. 특히 미국이 2022년 10월 첨단반도체 제조 장비와 인재를 차단한 이후 중국의 해외기술 탈취 현상이 심화하는 분위기다.

반도체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중국은 2020년 반도체 관련 학과를 최상위 등급인 '1급 학과'로 승격하고 칭화대, 베이징대 등 전국 거점 대학에 반도체 대학원을 대거 신설했다. 중국 발전을 계획하는 '제14차 5개년(2021~2025)'에서 반도체 분야를 핵심안보 영역으로 설정하고 2030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이는 목표를 세웠다. 시진핑 주석 역시 "반도체는 인체의 심장"이라며 전폭 지원에 나섰다.


학계에선 중국 기술 자립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형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은 "4~5년 전부터 권위 있는 국제 반도체학회에서 중국 발표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 연구진의 경우 많을 땐 5~6명, 적을 땐 2~3명 수준인데 중국은 수십 명씩 참가하는 상황"이라면서 "특허나 논문 내용을 보면 중국 수준이 엄청나게 올라온 것을 절감한다. 심하게 얘기하면 메모리 반도체 빼고는 우리나라를 일부 추월하거나 거의 턱밑까지 추격한 상태"라고 전했다.

김 소장은 이 같은 중국의 빠른 성장 요인으로 '특수성'을 꼽았다. 그는 "한국은 팹리스(설계)가 약한데 중국은 이 분야가 잘 구축돼 있고 파운드리(위탁생산)와도 연계가 잘 돼 있다. 또한 칩을 내수시장에 풀었을 때 사주는 곳도 많다"며 "거대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고른 반도체 밸류체인(가치사슬)을 구축해 성장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국내 반도체 기업의 경우 메모리 위주라 팹리스 분야 경쟁력은 밀린다는 지적이다.

최근 미국과의 반도체 대립이 심화하면서 중국은 기술 자립에 한층 열 올리고 있다. 당국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사상 최대인 3000억위안(약 56조원) 규모 펀드를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앞선 2014년과 2019년에도 각각 1387억위안(약 25조4000억원), 2000억위안(약 36조6350억원)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한 바 있다. 이 자금을 수혈 받은 중신궈지(SMIC)는 지난해 7나노(nm·10억분의 1m)로 만든 칩을 '화웨이60프로'에 탑재해 세계를 놀라게 했고 최근 5나노 칩 생산을 앞두고 있다. 창신메모리(CXMT)도 보조금을 받고 중국 D램 1위로 성장해 현재 인공지능(AI) 반도체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 나서고 있다. 양쯔메모리(YMTC)도 세계 최고 수준인 232단 낸드플래시 양산에 성공했다. 미국이 128단 이상 낸드 제조 장비를 차단한 상황에서 자체 기술력으로 200단의 벽을 뚫은 것이다.
"방심하면 중국에 뺏긴다"…삼성·SK하이닉스 비상
결과적으로 미국의 반도체 제재가 중국에 '독'이 아니라 '약'이 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반도체 공정 중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분야는 미국의 제재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도입이 차단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팹리스(설계)와 후공정(포장) 분야에서는 이미 세계적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파악된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조사회사 IC인사이츠(IC Insights)에 따르면 중국의 세계 팹리스 시장 점유율은 9%에 달한다. 미국(68%)이나 대만(21%)에는 못 미치지만 한국(1%)은 이미 추월했다. 노동집약적 분야로 꼽히는 후공정의 경우 해외 경쟁사를 인수합병(M&A)하면서 성장해 기술력이 해외 기업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미국이 장비 수출을 차단하면서 중국 반도체 장비 자생력도 높아지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중국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이 2022년 30%대에서 2025년에는 50%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14nm 이하 첨단 반도체 공정 분야에선 장비 국산화율이 10% 안팎에 불과하나 28nm 이상은 국산화율이 80%에 달할 정도로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력이 높아지자 미국은 최근 중국 창신메모리 등 6개 반도체 업체를 추가로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미세공정을 활용한 고성능 반도체뿐 아니라 구형 반도체를 생산하는 장비의 수입도 거의 불가능해진다. 미국은 또 기존 반도체 장비 운영에 필요한 서비스와 부품의 판매도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비약적 발전에 대해 국내 산업계도 발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소장은 "만일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 장비인 ASML의 EUV 노광장비 등이 중국에 투입된다면 한국 메모리 반도체도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며 "지금도 격차가 2~3년 수준으로 금세 추격 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감한 투자로 글로벌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는 "정부 역시 적극 투자하고 있으나 (보안 이슈 등으로)삼성·SK하이닉스와 학계 등 산학연이 결집해 기초연구부터 산업 상용화까지 이어지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반도체 수출 1등이기 때문에 글로벌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 당장 2~3년 내 이뤄지는 상용화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좀 과감한 투자로 우리만 할 수 있는 독보적 연구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메모리는 독자적으로 클 수 없다. AI 반도체 필수품인 HBM만 잘 키운다고 되는 게 아니란 얘기"라면서 "한국의 최대 강점으로 꼽히는 반도체 미세화 등 제조공정 바탕으로 독보적 헤게모니(패권)를 잡을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은 심층기획 '중국산 대공습 현장을 가다'를 총 6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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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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