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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시니스와 어센틱 사이…HR 애널리틱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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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를 끓는 물에 집어넣으면 바로 뛰쳐나오지만, 미지근한 물에 넣어 천천히 온도를 높이면 가만히 있다가 죽는다.”

오랜 기간 진실이라 믿어 온 얘기다. 과연 이 이야기는 진실일까? 메리엄웹스터(MERRIAM-WEBSTER)는 170여 년 전 만들어진 사전으로, 영어 사전의 표준이자 대명사로 불린다. 메리엄웹스터는 2003년부터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시대 정신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매년 '올해의 단어'를 선정하고 있다.

2006년 메리엄웹스터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트루시니스(Truthiness)'였다. '사실이나 근거 없이 느낌으로 믿는 진실'이란 신조어로, 우발적이거나 심지어 의도적인 거짓도 어느 정도 '진실스럽게' 들리기만 하다면 진실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말한다. 흥미롭게도 17년이 지난 2023년 올해의 단어는 어쎈틱(Authentic, 진짜)’으로 선정됐다.

헛된 믿음과 거짓도 오랫동안 자주 쓰이다 보면 결국 친숙하게 느껴진다. 어느 순간에 이르면 진실처럼 들리게 된다. 문제는 옳다고 믿는 것이 전혀 옳지 않을 때에도, 그 믿음에 근거해 익숙하고 편안한 방식의 사고와 행동을 이어 간다는 점이다.

기업 안에는 재무성과, 고객 정보, 구성원 이력 등 무수히 많은 데이터가 쌓여 있다. 많은 이들이 이런 데이터 안에 숨겨진 패턴과 의미를 찾으려 한다. 이런 활동을 애널리틱스(Analytics)라 부른다.

애널리틱스라 하면 대개 수학과 통계 기법을 활용한 분석(Analysis)을 떠올린다. 틀린 건 아니지만 정확하진 않다. 분석은 수학, 통계, 기술적 모델 등을 바탕으로 데이터를 다루는 활동이다. 애널리틱스는 분석을 통해 얻은 시사점을 바탕으로 더 나은 행동을 추천하고 의사결정을 가이드하는 활동까지 포함한다.

이런 측면에서 HR 애널리틱스를 정의하면 다양한 방법론과 프로세스를 활용해 '인적자원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합리적 의사결정을 돕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HR 의사결정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리고 그 중심에 HR 애널리틱스가 자리한다.

HR 애널리틱스는 분석의 깊이와 통찰 수준에 따라 네 단계로 구분한다.

우선, 가장 기초적 HR 애널리틱스로 인적자원 데이터를 단순 분석해 현황을 보여주는 단계다. 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에 초점을 두고 HR 효율성을 파악하는데 주력한다. 이렇게 파악된 정보는 대개 지표로 관리되는데, 인당 영업이익, 직급별 인원 비율, 퇴직률, 핵심인재 비율, 장기 승진 누락자 비율 등 인력관리에 있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다만, 지표관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애널리틱스라 말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다. 대체로 데이터의 표준적 측정치와 추이를 제공하는 정도로, 의사결정에 직접적 통찰을 주거나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까지 미치지 못한다. 일상적 리포팅 활동에 가깝다.

다음으로는 ‘현재 상황이 어떠한가’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둔다. 조직의 인적자원 수준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한편, 외부 지표나 경쟁기업 대비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려준다. 단순 통계나 지표화를 넘어 데이터 간 패턴과 연관성 파악을 위해 텍스트 마이닝, 감성분석, 머신러닝 등 고급 분석 기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A사는 국내 대표 건설사 중 하나다. 6000여 명에 달하는 직원이 국내외 현장에 흩어져 일한다. 많은 직원이 다양한 곳에서 근무하다 보니 ‘어떤 직무에, 누가,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데 애를 먹는다. 예를 들어, ‘초고층 빌딩’ 같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해당 영역의 전문가를 찾느라 대대적인 조사를 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반복되는 작업으로 인사 담당자는 어려움을 겪었다. 더 큰 문제는 조사를 할 때마다 결과에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A 건설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널리틱스를 활용한다. 우선 직원들의 근무 이력, 지식·스킬 수준, 근속연수 등 다양한 HR 데이터를 분석해 업무 전문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파악했다. 분석 결과, 업무 전문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근무기간이나 직급이 아니라 담당 직무와 관련성 높은 업무 경험, 고난도 프로젝트 경험, 공사 수행 리더십 등으로 밝혀졌다. A사는 이런 요소를 종합 계량화해 전 직원의 ‘직무수행역량’을 4단계로 체계화하고 이를 인력 운영에 활용한다.

세 번째 HR 애널리틱스 단계에서는 직면한 이슈 해결에 주력한다. ‘특정 현상이 왜 발생했고,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높은 성과를 내는 직원의 특징은 무엇인가’, ‘훌륭한 리더는 어떤 사람인가’, ‘조직몰입을 높이는 업무환경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에 데이터를 통해 답을 찾는다.

제록스는 한때 콜센터 직원관리에 골머리를 앓았다. 신입 콜센터 직원 상당수가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신입 교육에 인당 5000달러 가량을 투자하고 있었기에 회사의 손실은 상당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제록스는 콜센터 직원의 다양한 인적 데이터와 장기근속 간의 관계를 분석한다. 제록스는 이전 직장에서의 근무 경험이 장기근속에 영향을 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데이터는 다른 결과를 보여줬다. 분석 결과, ‘창의적 성향’을 지닌 직원일수록 오래 근무하며 성과도 우수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제록스는 분석 결과를 직원 선발 기준에 반영했고, 그 결과 신입직원 조기 이직율이 6개월 만에 이전 대비 20%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마지막 단계의 HR 애널리틱스 핵심은 예측이다.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이며,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예측 애널리틱스의 대표적 활동으로 인력계획을 꼽을 수 있다. 인력계획은 다양한 사업 환경과 영향요인을 시뮬레이션해서 미래에 필요한 인력 수요를 예측한다.

디즈니랜드의 방문 고객수는 계절, 날씨, 이벤트 등 여러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들쑥날쑥한 고객 수에 맞춰 직원을 배치하는 일은 HR에게 골치거리다. 여유 있게 직원을 준비해 두면 쓸데없이 노는 직원이 많아져 인건비 손실이 생긴다. 반대로 충분한 직원을 배치하지 않으면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등 고객 불편을 초래한다. 월트디즈니는 테마파크의 인력 운영을 최적화하기 위해 예측 애널리틱스를 활용한다. 테마파크 입장객 수, 예약된 호텔 객실 수, 지역의 날씨 등을 시뮬레이션해 향후 6주간 필요한 직원 수요를 예측하는 것이다. 예측 결과는 채용, 인력 배치에 반영된다.

다음 질문에 답해보자. “요즘 직원들 사기는 어떠한가요?” 우선, “실적이 좋아서 그런지 직원들이 활기차 보입니다”, “타운홀 미팅 때 보니 사람들 표정이 어두워 보였습니다”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또 다른 방식의 대답으로는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는 90점입니다”, “작년보다 이직률이 5% 늘었습니다”처럼 데이터로도 답할 수 있다.

사람의 특성이나 내면은 제품이나 시장처럼 숫자나 도표로 정형화하기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HR 의사결정을 할 때, 합리적 검증 없이 오래된 관행을 답습하고 타사의 성공사례를 무작정 따라하는 경우가 본다. 개인의 경험 혹은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나의 감(感)으로는…’, ‘내 경험에 비춰볼 때…’ 같은 주관적 근거를 들먹이며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식이다. HR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트루시니스다.

HR 의사결정은 개개인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하다. 오래된 관행, 타사의 성공사례, 개인의 감에 의지한 결정을 할 경우 낭패를 볼 수 있다. 직급 단계를 축소했다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상황, 격려금을 지급했더니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반발, 성과연봉제를 시행하자 직원 사기가 떨어지는 사태 등을 우리는 자주 접한다.

스탠포트 대학의 제프리 페퍼 교수는 "관행, 경험, 벤치마킹 보다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증거에 의거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근거 기반의 경영(Evidence-based Management)을 강조했다. HR도 그렇다. HR이 보다 신뢰 있는 가치를 주려면 기존 관행, 타사 성공사례, 개인의 감 이상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영 활동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오늘날, HR도 데이터가 들려주는 진실에 보다 귀 기울일 때다.

김주수 MERCER Korea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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