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현장이 한층 더 혼란스러워질 전망이다. 의대 교수들이 오는 25일을 사직서 제출일로 제시하면서 집단사직을 예고해서다. 이미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의료 현장 공백은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17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국의대교수 비대위)는 지난 15일 밤늦게까지 20개 의대가 참여한 가운데 회의를 연 뒤 16개 의대 교수들이 오는 25일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발표했다.
다른 4개 의대 교수들은 다음 주 설문조사를 진행한 뒤 동참 여부를 결정할 계획으로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 회의에 참석한 의대 외에 다른 의대로 이런 움직임이 퍼질 여지도 배제하긴 힘들다.
지난 11일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집단사직 결정을 내리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방안 도출에 나서지 않을 경우"라는 조건을 달았는데, 이번에도 정부에 조건을 내걸었다. 역시 '2000명 증권 발표 철회'가 핵심이다.
비대위 방재승 위원장은 16일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의사단체 모두의 양보를 강조하면서도 "정부가 제일 먼저 '2000명 증원'을 풀어주셔야 합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의료 파국을 막기 위해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수들은 '의대 증원' 자체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서울의대교수 비대위가 지난 11일 사직 계획과 함께 공개한 자체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서울의대 교수의 66%는 '(의대 증원) 전면 재검토 후 재논의'를 정부와 의료계 사이 타협 방안으로 꼽았다. 99%는 정부의 '2000명 증원안'이 과학적·합리적이지 않다고 했다.
특히 60%는 '정부가 2000명 증원에 대한 타협은 없다고 못 박은 상황에서 모든 교수가 학생, 전공의들의 복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전공의·학생들의 복귀보다도 '2000명 증원'을 막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는 교수들이 절반을 넘는다.
이들은 '집단이익'이 걸릴 때마다 한 몸처럼 움직였다. 그때마다 정부는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그간 '의사 불패'가 이어져 왔던 것이다.
2000년 의약분업 추진 때도 의료계는 전공의부터 동네의원까지 대규모 파업에 돌입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의료대란 현실화에 겁을 먹은 정부는 '의대 정원 10% 감축'과 수가 인상 등으로 양보했다.
2020년 의대 증원 추진 때도 의협은 즉각 '총파업'을 선언했고, 전공의들은 '집단휴진'에 들어갔다. 의대생들은 동맹휴학과 함께 의사 국가고시마저 대규모로 거부했다. 의대 교수들의 사직 선언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정부는 원점에서 재논의하겠다고 '항복 선언'을 했다.
이번에도 의협이 먼저 '파업'을 언급하며 정부와 갈등을 빚은 뒤 전공의들이 집단사직하고, '예비 의사'인 의대생들이 동맹휴학에 돌입했다. 전공의에 이어 인턴, 전임의들이 떠났고, 이제 의료현장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교수들마저 집단사직을 예고했다.
환자들의 불안은 커져만 가고 있다.
정기적으로 진찰받으러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다닌다는 한 시민은 "의사들이 모두 사직서를 낸다고 하니 불안하기만 하다"며 "고령화로 의사 수요가 늘어난다는데, 의대 증원을 이렇게 못 하게 하면 그럼 의사 수는 어떻게 늘리냐"고 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곧 수술을 앞둔 한 환자도 "서울대병원과 다른 병원 교수들까지 다 사직하면 어쩌냐”며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건지 너무나 불안하다"고 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