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들이 ‘국민 밉상’이 돼가고 있다. 고금리 여파로 국민들은 이자 폭탄에 신음하는데, 은행원의 월급봉투만 두둑해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면서다. 은행연합회가 발표한 ‘은행 경영현황 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책은행을 제외한 국내 18곳 은행 가운데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는 곳은 10곳에 달했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은 물론이고 규모가 작은 부산과 경남 등 지방은행의 직원 연봉이 1억원을 가뿐히 넘었다.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데도 시중은행 노조들이 속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올해 임금 8.5%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최근 5년(2019~2023년)간 금융 노사 평균 임금 인상률(2.24%)과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2.5%)의 네 배에 가깝다.
금융노조는 월급은 올려달라면서도 “일은 덜 하겠다”며 주 4.5일 근로제(주 36시간 근무) 도입까지 요구하고 있다. 근로 시간이 줄어들면 은행 영업점 직원이 감소해 모바일 금융 서비스 이용이 어려운 노년층 고객의 불편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가입자들은 답답해하고 있다. ‘안전한 상품’이란 은행 직원의 말만 믿고 목돈을 맡긴 계좌만 24만3000개. 금액으로는 15조4000억원에 달한다. 노후 자금을 맡긴 65세 이상 고령 투자자 계좌도 6만 개(4조5000억원)나 된다. 은행 가입자들의 손실액이 1조2000억원을 넘어선 가운데 연말까지 손실액이 5조원에 가까울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월급이 나오는 은행 곳간도 비어갈 가능성이 높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홍콩 ELS 분쟁 조정 기준(배상안)을 발표하면서 불완전 판매가 확인될 경우 판매사가 투자 손실의 최대 100%까지 배상하도록 했다. 실제 배상 비율은 20~60%로 추정되지만, 은행권의 배상액은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노조는 홍콩 ELS 사태의 책임을 은행 경영진에만 돌리고 있다. 경영진이 ELS 판매 실적을 승진·성과급 책정 기준인 성과평가지표(KPI)에 비중 있게 반영해 은행원들이 ‘묻지마 판매’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올해 단체협약 요구안에 ‘금융투자상품 성과 관리방식과 새로운 업무를 추가할 때는 노조와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홍콩 ELS 사태를 기회로 은행원들이 업무를 줄여보려는 ‘꼼수’를 쓴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임금 인상 요구에 앞서 홍콩 ELS 고객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회사와의 고통 분담안 마련에 나서는 게 상도(商道)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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