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메뚜기족’만 지원금을 독식할 수 있습니다.”
14일 통신사를 옮기는 휴대폰 번호이동 가입자에 대해 최대 50만원의 전환지원금 추가 지급이 허용된 것을 두고 시끌시끌하다. 통신 업계는 물론 소비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커지는 분위기다. 이용자 차별부터 알뜰폰 시장 위축, 소모적 마케팅 경쟁 유발 등이 주요 문제로 꼽히고 있다. “정부만 빼고 모두가 불편한 정책”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용자 갈라치기’ 논란
방송통신위원회는 전날 ‘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시행령 개정에 따른 고시 개정안을 의결했다. 14일부터 통신사를 변경하면 현행 공시지원금, 추가지원금에 더해 별도의 전환지원금을 최대 50만원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한 게 핵심 내용이다. 통신사 간 지원금 경쟁을 활성화시켜 이용자 혜택을 늘리겠다는 취지다.통신 업계 안팎에선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이용자 차별이 가장 큰 논란거리로 꼽힌다. 번호이동 고객에게만 지원금을 차등 적용하면 신규·기기변경 이용자를 차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번호를 꼭 써야 하는 기기변경 이용자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식이다. 결국 통신사를 자주 옮기는 ‘메뚜기족’만 늘고 장기 가입자는 홀대받는 식의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됐다.
업계 관계자는 “정보에 밝은 젊은 층 위주로 메뚜기족이 형성되고, 지원금 혜택도 쏠릴 수 있다”며 “노년층이 지원금 정책에서 상당 부분 소외되는 일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번호이동 의지가 없던 이용자까지 불필요하게 번호이동 및 단말기 교체를 유도해 기존 번호이동 시장이 과열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서울YMCA 시민중계실도 이번 조치가 ‘이용자 갈라치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서울YMCA 측은 지난 7일 성명서에서 “당초 단통법이 추구하던 가입유형 간 차별 금지를 대폭 확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잦은 단말기 교체와 보급에 따른 가계통신비 증가와 자원 낭비 등의 부작용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알뜰폰·통신 3사 모두 속앓이
알뜰폰 사업자들은 전환지원금 추가 지급으로 직격탄을 맞았다며 아우성이다. 과도한 번호이동 지원금으로 알뜰폰 이용자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약한 알뜰폰 사업자에겐 통신 3사의 지원금 확대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 측은 “가계 통신비 부담을 낮출 방안으로 ‘알뜰폰 활성화’ 정책을 외쳐오던 정부가 돌연 알뜰폰 사업 기반을 흔들고 있다”고 했다.
통신 3사도 표정이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모두 마케팅 비용 때문에 고민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소모적인 마케팅 경쟁을 강요받고 있다는 토로가 이어지고 있다.
전환지원금을 늘리려면 각 통신사는 마케팅 비용을 더 늘려야 한다. 고정비 비중이 높은 통신업 특성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고정비 중 이미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마케팅 비용을 더 늘리는 것은 어렵다”며 “마케팅 비용을 늘리면 통신 인프라 구축 비용을 줄여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대로면 정작 통신 품질 경쟁은 뒤처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