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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국제 금융기관에 묶여 있는 러시아 자산에서 나온 부가 이익 최대 30억유로(약 4조3000억원)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방침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가 유로클리어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에서 창출된 이익을 압류해 우크라이나에 20억~30억유로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유로클리어는 37조7000억유로(약 5경4000조원)의 금융 자산을 관리하는 세계 최대 국제예탁결제기구다.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 등의 자산도 취급한다.
EU 집행위는 오는 21~22일 예정된 EU 정상회의 이전 공식적인 제안에 나설 전망이다. 관련 소식통들은 “집행위가 회원국들의 승인을 원활히 이끌어 낸다면, 이르면 7월께 첫 자금 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전했다.
FT가 확인한 제안서 초안에 따르면 EU는 유로클리어에서 나온 순이익의 97%를 EU 예산으로 전용한 뒤 매 분기, 또는 1년에 2회 주기로 우크라이나에 지급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금리 변동 상황에 따라 지원금은 최대 30억유로까지 마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러시아 자산에서 나오는 부가 수익은 2027년까지 200억유로(약 28조7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유로클리어는 현금, 유가증권 등 형태로 동결돼 있는 러시아 자산의 만기가 차면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해 왔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약 1900억유로(약 272조6000억원)어치 러시아 자산이 유로클리어에 묶였고, 여기서 현재까지 38억5000만유로(약 5조5000억원)의 투자 수익이 발생했다.
다만 이미 발생한 약 순이익에 소급 적용하지는 않겠다는 게 EU의 구상이다. 이 수익은 유로클리어에 묶여 있는 자산과 관련해 러시아에서 제기된 100건 이상의 소송에 대응하기 위한 법률 비용으로 사용할 방침이다. EU 집행위는 러시아 법원이 자국 증권예탁결제원에 예치된 약 330억유로의 서방 자산에 대한 압류 명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
그간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무기 조달 자금으로 활용할지 여부와 관련해 주요 7개국(G7) 간 의견이 분분했다. 군사·안보적 목적의 기금 조성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EU는 애초 이 자산을 우크라이나의 전후 재건에 쓰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로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이 끊기자, 원금은 그대로 두고 투자 수익만 쓰는 병용 방식을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사진)은 지난달 “러시아 자산에서 나온 우발적 이익을 우크라이나를 위한 군사 장비를 공동 구매하는 데 쓰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활용할 방법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다만 EU 집행위가 회원국들의 동의를 만장일치로 얻어낼지는 미지수다. 최근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과 만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시 우크라이나에 단 한 푼도 지원하지 않을 것이고, 이것이 종전을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고 전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을 희망한다고 발언했다. 오르반 총리는 유럽 정상 중 가장 반(反)EU 성향인 인물로 꼽힌다. 그는 이번 방미 기간 백악관은 찾지도 않았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도 러시아 동결 자산을 압류하는 것이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국제법과 법치에 반한 것이라면 절대 행동해선 안 된다”고 분명히 했다. 이밖에 독일 등도 유로화의 지위가 불안정해질 가능성 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쟁 장기화로 정부 재정이 빠듯해진 우크라이나 정부는 동결된 러시아 자산이 절실한 상황이다. 키이우 재무부에 따르면 올해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이 필요한 기금 370억달러(약 48조6000억원) 중 절반만이 EU,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약속됐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