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최근 ‘애플카 프로젝트’ 중단을 선언했다. 비판과 아쉬움의 목소리도 크지만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미국 시사주간지 디애틀란틱은 “애플카는 한 대도 팔리지 않았지만, 자동차 산업에는 큰 혁명이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애플카의 방향성은 ‘SDV(Software Defined Vehicle)’에 가까웠다. 하드웨어 중심의 자동차 시장에 ‘소프트웨어’라는 화두를 던졌고, ‘애플 카플레이’ 등을 선보이며 자동차 산업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공하기도 했다.
SDV는 직역하면 ‘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자동차’다. 소프트웨어가 주행 성능은 물론 편의, 안전 기능, 차량의 품질 나아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까지 규정하는 형태를 말한다. 기존 차량과 가장 큰 차이는 무선 업데이트, 즉 OTA(Over the air)다. 과거에는 자동차 결함이 발생하면 서비스센터를 찾아 직접 수리를 맡겼다. 완벽한 SDV 시대에는 소프트웨어 무선 업데이트만으로 결함을 잡을 수 있다.
보다 진화된 기능도 소프트웨어로 제공된다. 연료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 연비가 개선된다. 실시간으로 교통 정보를 수신하고, 타 차량과 통신 기능을 접목해 보다 진보한 자율주행도 가능해진다. 결론적으로 완전자율주행 시대로 넘어가기 위해 SDV 전환은 필수 조건이다.
아직 풀어야 할 문제도 많다.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에서는 하드웨어 기능이 전부 분산된 형태로 설계가 이뤄졌다. 하지만 SDV에서는 이들을 통합하는 중앙집중방식으로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 분산형 구조를 가진 과거 차량에서는 각각의 기능을 제어하는 버튼이 존재한다. 하지만 중앙집중방식을 사용하면서 점차 차량의 버튼은 사라지고 태블릿 화면에서 소프트웨어로 제어하는 형태로 바뀐다. 소프트웨어가 중심이기 때문에 OTA를 통한 무선 업데이트에 유리하다.
현재 많은 완성차 업체들도 이런 중앙집중형 설계구조를 검토하고 채택하고 있다. 기능이 비슷한 것들을 묶어 상위 제어유닛을 두는 도메인 방식이 많이 활용된다. 인포테인먼트, 자율주행, 파워트레인 등 큰 기능을 분류하고 도메인컨트롤유닛(DCU)을 통해 하위에 세부 기능을 관할하는 전자제어유닛(ECU)을 제어하는 형태다.
기능별로 세부 기능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운영체제(OS) 개발이 필요하다. 효율성을 높여줄 수 있는 추가적인 소프트웨어도 접목돼야 한다. 결론적으로 소프트웨어적인 기술력이 차량의 설계 구조를 단순화하고, 차량의 단가를 결정짓는 주요 요소가 된다.
해킹에 대한 방어도 필요하다. SDV는 소프트웨어적인 특성상 통신 해킹, 차량 해킹 등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유럽경제위원회(UNECE)는 이 때문에 차량 보안, 무선 업데이트 부분에서 각각 사이버 보안 국제 기준을 제정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소프트웨어 기술 내재화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미국의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는 애플 서비스 핵심 인재를 지난해 임원으로 영입한 바 있다. 아우디는 25년까지 정보기술(IT) 전문인력을 최대 2000명까지 추가 영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도요타와 혼다 역시 공격적으로 소프트웨어 인재 확보에 나섰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18조원을 투입해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2022년에 인수한 자율주행 스타트업 포티투닷을 그룹 내 SDV 사업 센터로 두고 공격적으로 인재를 채용하고 있다. KG모빌리티도 별도의 소프트웨어 전담 조직을 통해 SDV 전환에 대응하고 있다. 사이버 보안솔루션 업체인 페스카로 등 IT 기업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등 외부와의 협업도 활발하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오는 2032년 글로벌 SDV 시장은 2490억달러(약 332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 예상치도 22.1%에 이른다.
김태호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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