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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이 인공지능(AI) 기업들에 첨단 반도체를 배급하기로 했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로 원활한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중국 빅테크(대형 기술기업)들이 물량을 독식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현지시간) "상하이를 포함한 최소 17개 중국 지방 정부가 AI 스타트업에 '컴퓨팅 바우처'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수출 제한, 빅테크의 독식으로 인해 칩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AI 스타트업들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다. FT는 "(유상 배급제를 실시해)공평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AI 기업들이 컴퓨팅 성능을 공평하게 임대할 수 있는 국영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지방 정부들이 제공할 바우처 금액은 통상 14만달러에서 28만달러 선에서 책정됐다. AI 스타트업들은 발급받은 바우처를 통해 데이터센터에서 거대언어모델(LLM) 등을 시험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의 한 AI 기업가는 "미국의 수출 통제 강화 이후 중국의 클라우드 빅테크들이 GPU(그래픽 처리 장치) 선점 공세에 나선 탓에 기존 계약이 취소당하기도 했다"며 "우리 신생기업들의 컴퓨팅 비용을 완화해주는 조치"라고 말했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트댄스 등 중국 빅테크들은 지난해 미국의 통제 강화 이후 그간 비축해둔 AI 반도체 대부분을 회사 내부적으로 쓰거나 중요 고객만을 위해 활용했다. 알리바바 클라우드 사업부 직원들은 "우리가 확보한 고급 GPU 대부분을 알리바바 그룹 내에서 쓰고 있다"며 "고성능 칩을 확보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기업은 엔비디아의 게임용 칩을 AI 용도로 바꾸거나 암시장을 통해 반입하는 등 다양한 궁여지책을 모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 차원의 바우처 제도가 근본적인 수급난을 해결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86리서치의 찰리 차이 분석가는 "바우처는 신생 기업들의 비용 장벽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칩 자원 부족 문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당국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외국산 칩을 대체하기 위해 중국산 칩을 사용하는 AI 기업에 대한 보조금 프로그램도 조만간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