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크너가 독일을 넘어 전 세계에 닿을 수 있을까.”
영국 문화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지난해 말 칼럼을 통해 이런 말을 했다.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독일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1824~1896)가 한층 세계적이고 보편적 공감대를 얻게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는 대목이었다. 어찌 됐건 ‘브루크너의 해’를 맞은 올해는 전 세계 공연장에 ‘브루크너의 향연’이 이어지고 있다. 그의 음악에 열광하는 이들(브루크네리안)은 클래식 마니아 중에서도 ‘하드코어’로 분류되는데, 그만큼 브루크너의 음악 세계가 다소 복잡하면서 초월적이고 깊기 때문이다.
‘브루크너 스페셜리스트’ 틸레만
이 가운데 독일 베를린에서 특별한 브루크너 연주가 열렸다. 지난달 29일 베를린시 미어가르텐 필하모니홀에서 열린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 이야기다. 지휘봉은 브루크너에 대한 애착이 큰 크리스티안 틸레만(65)이 잡았다. 그는 이전에도 베를린필을 비롯한 여러 악단과 브루크너를 연주해왔고, 최근에는 베를린필의 경쟁 악단으로 꼽히는 빈 필하모닉과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음반을 발매한 자타공인 ‘브루크너 스페셜리스트’다. 브루크너뿐 아니라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독일 후기낭만에 정통한 지휘자로도 정평이 나 있다.브루크너의 대가 틸레만과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베를린필이 의기투합한 브루크너는 기대할 수밖에 없는 조합이지만 생소한 프로그램 탓에 모험이기도 했다. 이날 이들은 브루크너 9개의 교향곡 중 하나가 아니라 그가 작품 번호조차 부여하지 않은 ‘00번’(습작 교향곡)과 ‘0번’으로 불리는 d단조 교향곡 등 두 개의 초기 작품을 연주했기 때문이다. 청중은 물론이고, 음악가들조차 생소한 이들 작품은 연주자와 청중 모두에게 도전이자 의문이었다. 베를린필은 같은 프로그램으로 3월 1~2일 세 차례 공연을 이어갔다.
이날 2개의 교향곡이 연주된 총 85분 동안 틸레만과 오케스트라는 긴장감을 길게 이어가며 설득력 있는 연주를 보여줬으며, 이를 통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은 원석의 브루크너를 캐냈다. 초기 작품인 만큼 베토벤, 브람스 등 다양한 작곡가의 향기가 공존하는 듯했지만 그 가운데 브루크너의 개성 또한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0번으로 불리는 d단조 교향곡에서 틸레만과 베를린필의 저력이 돋보였다. 브루크너가 이 곡을 한 지휘자에게 보여주자 ‘주제를 어디서 찾을 수 있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실제로 도입부에서는 명확한 주제 선율이 등장하기보다는 주요 3화음을 기반으로 쌓여가는 구조물처럼 곡이 진행됐다. 이런 부분은 여러 번 등장했고, 틸레만은 이때마다 음색과 음량 등 구성 요소를 조금씩 달리해 촘촘하게 표현했다. ‘브루크너의 안개’ 등으로 불리는 현악 파트의 트레몰로(음이나 화음을 규칙적으로 되풀이하는 주법) 또한 자주 보였는데, 베를린필의 현악 파트는 이를 투박하리만큼 조직감 있는 사운드로 표현하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덜 알려진 교향곡 ‘0번’으로 승부수
2악장에서는 브루크너 특유의 종교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숨죽이며 시작되다가 목관 파트, 현악 파트가 나지막이 음색을 주고받았고, 이는 마치 하늘과 땅의 대화처럼 느긋하게 이어지며 클라이맥스로 진입했다. 에마뉘엘 파위, 알브레히트 마이어 등 스타 단원이 많기로 유명한 악단인 만큼 솔로 파트가 등장할 때마다 귀를 기울이는 재미도 있었다.긴박한 무곡리듬으로 진행되는 3악장에 이어 마지막 악장에서는 금관의 장엄한 선율과 현악의 경쾌한 리듬이 번갈아가며 등장했고, 특히 금관 악기와 팀파니의 효과적인 활용은 원숙하지는 않지만 생동감 넘치고 아이디어 가득한 초기 브루크너의 매력을 느끼기 충분했다. 악단의 안방 같은 필하모니홀의 균형 잡힌 음향은 이를 뒷받침했다.
틸레만의 지휘는 치밀하고 절제돼 있었지만 그렇다고 차갑고 건조하지는 않았다. 그의 브루크너는 신비로움이나 숭고함보다는 치열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처럼 보였고, 조금도 낭비되는 부분 없이 빠른 전환과 다채로운 음색을 토대로 전진했다. ‘정통파’로 유명한 빈필하모닉 음반과는 사뭇 달랐다. 베를린필의 개방적이고 탄력 있는 사운드는 ‘국제적 사운드’로 불릴 만했고, 이는 틸레만과 팽팽하게 조우했다.
대중적으로 익숙한 7번이나 걸작으로 꼽히는 9번 등 다른 브루크너 교향곡을 했다면 훨씬 손쉽게 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간 소외된 초기작을 통해 브루크너의 저변까지 다가가려는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다. 연주가 끝나고 쏟아진 박수는 그래서 특별했다. 들뜨고 벅차오르는 종류의 박수가 아니라 이들의 도전에 설득된 듯 수긍 내지는 공감의 박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베를린=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