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열풍이 한풀 꺾였지만 이 종목은 예외다. 연일 불기둥을 세우더니 올들어서만 주가가 4배 올랐다. 2차전지용 전해액을 만드는 코스닥 상장사 엔켐 얘기다.
개인투자자들은 ‘제2의 에코프로’가 탄생했다며 허겁지겁 매수행렬에 올라타고 있다.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포모(FOMO: 뒤처짐에 대한 공포) 심리’까지 더해지며 매수세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실적이 뒷받침 되지 않은 주가 급등으로 주가수익비율(PER)이 237배까지 오르는 등 고평가 논란도 일고 있다.
엔켐은 26일 11.68% 급등한 33만원에 마감했다. 올들어 주가 상승률은 315%에 달한다. 시가총액 순위는 올초 38위에서 5위까지 단숨에 치솟았다. 개인들은 온라인 주식카페 등에서 수익 인증글을 올리는 등 엔켐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단기간 주가가 급등하자 한국거래소는 엔켐을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하고 시황변동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중요정보가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엔켐의 주가를 끌어올린 건 개인투자자들이다. 개인은 올들어 엔켐을 3102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엔켐은 삼성전자 삼성SDI 네이버 두산로보틱스에 이어 개인투자자 순매수 5위 종목에 올랐다. 코스닥에선 단연 1위다.
엔켐의 주가가 급등한 것은 미국이 발표한 전기차 세제 혜택 정책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2월 미국 정부는 IRA상 해외우려기업(FEOC)에 중국을 포함시켰다. 새 규정으로 배터리 부품에 중국산이 들어간 경우 미국 시장에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다. 이에따라 국내 전해액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엔켐은 국내 전해액 생산 1위 기업이다. 글로벌에선 중국의 3개 업체에 이은 4위다. 중국업체들이 세제혜택에서 배제되면 가장 먼저 수혜를 볼 것이란 기대가 커졌다.
엔켐은 현재 LG에너지솔루션, SK온, 중국 CATL 등에 전해액을 납품하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생산 능력 확충에 집중하고 있는데, 미국 조지아 공장의 경우 추가 증설을 통해 올해 말까지 총 20만t 규모로 생산능력을 늘릴 방침이다.
하지만 최근 엔켐의 실적은 2차전지 업황과 함께 악화됐다. 이 회사의 작년 1~3분기 영업이익은 149억원, 75억원, 6억원으로 매분기 급감했다. 매출도 3개 분기 연속 줄었다. 실적은 악화됐는데 주가만 급등하다보니 PER은 연초 50배에서 현재 237배까지 치솟았다.
작년 에코프로처럼 증권사들은 엔켐의 급등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작년 7월 이후 보고서를 1건도 내놓지 않아 ‘깜깜이 투자’가 우려된다.
‘오버행(잠재적 매도 물량)’ 폭탄도 우려도 있다. 엔켐은 운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전환사채(CB)를 발행해왔다. 오는 5월부터 11회차, 12회차 CB의 보통주 전환이 가능해지는데 각각 315억원, 1100억원 규모에 달하는 물량이다. 두 회차 물량의 전환가액은 현재 주가의 4분의1 수준인 7만원 초반대에 형성돼 있어 차익실현 욕구가 클 전망이다.
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2차전지 산업은 업황 둔화에 미국 대선이라는 암초까지 만난 상황”이라며 “전방업체인 2차전지 셀업체들의 실적 전망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부품 소재 업체들에 대한 눈높이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