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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돼지농장의 변신…책향기 나는 '지식의 보고'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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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돼지농장이었죠. 최근 들어선 싱가포르 최대 규모 공공도서관 덕에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책을 들고 찾는 사람으로 북적입니다.”

싱가포르 북동부 풍골에서 나고 자란 크자이아 청(58)은 자신의 고향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해 4월 개관한 풍골지역도서관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그는 “예전엔 농가를 관리하는 어른들이 마을 주민의 대다수였다면 최근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부터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말했다.
공공도서관 확충 나선 싱가포르
1990년대까지만 해도 1차산업이 주력이던 풍골은 최근 신도시 프로젝트로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인근 스타디움과 공공주택 등이 아직 뼈대만 갖춘 상태인데도 신도시 중심부에 지상 5층의 대규모 도서관이 먼저 들어섰다. 기자를 안내하던 싱가포르 국립도서관위원회(NLB) 관계자한테 이유를 묻자 이런 답을 내놨다. “국력은 곧 지력(知力)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정부 차원에서 ‘지식의 보고’인 도서관의 우선순위를 높게 정한 결과입니다.”

싱가포르가 공공도서관 확충에 팔을 걷어붙였다. NLB는 2021년 ‘LAB 25’라는 5개년 계획을 마련해 도서관 신설과 전반적인 시설 개선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 누구나 5분 거리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2025년까지 싱가포르 중심부 20여 곳과 동서남북 외곽 거점에 지역도서관을 1개씩 개설해 운영한다는 구상이다.

풍골지역도서관은 이런 ‘전 국민 도서관 생활권’ 계획의 마지막 퍼즐이다. 주룽, 템피니스, 우드랜드 등 기존 지역거점도서관 세 곳에 이어 북동부의 도서관 수요를 흡수하면서다. 역대 싱가포르 공공도서관 중 최대인 1만2180㎡ 규모로 조성됐다. 지역거점도서관은 면적 1만㎡ 이상 대규모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된다.

신축뿐만이 아니다. 기존 도서관 시설도 업그레이드했다. NLB는 최근 3년간 센트럴공공도서관 초아추캉공공도서관 등을 리모델링했다. 스마트폰 모바일 앱은 물론, 지하철역과 쇼핑몰에 비치된 키오스크를 통해 이용자들이 언제 어디서든 소장 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교육과 커뮤니티 허브 역할
싱가포르 국민의 도서관 이용률은 높아지는 추세다. NLB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싱가포르 거주자의 78%가 NLB 관할 도서관을 방문했다. 코로나19 사태 때인 2022년(61.7%)은 차치하더라도 팬데믹 발생 이전인 2019년(72%)보다 증가한 수치다. 2021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책을 많이 읽는다’고 답한 응답자 비중이 70%를 넘었다.

해마다 독서 인구가 감소하고 도서관 이용자가 줄어드는 세계적인 추세를 놓고 보면 이례적이란 평가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연간 종이책 독서율은 2011년 66.8%에서 10년 사이 40.7%로 줄었다. 성인의 도서관 이용률도 100명 중 16명 수준에 불과했다. 해외 상황도 비슷하다. 미국은 2019년 기준 국민 1인당 3.9회 도서관을 찾았다. 10년 전(1인당 5.3회)의 70% 수준이다. 영국에선 2010년 이후 도서관 780여 곳이 문을 닫았다.

싱가포르 국민이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도록 만든 비결은 무엇일까. 싱가포르 공공도서관에서 만난 시민들은 “도서관을 단순히 도서 대출의 창구가 아니라 ‘교육과 커뮤니티의 허브’로 여긴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1월 새 단장을 마치고 재개관한 센트럴공공도서관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마련한 생성형 인공지능(AI) 교육시설은 주말이면 긴 대기 줄이 이어진다. 해양 생태 다양성을 테마로 한 전시 공간도 신설했다. 풍골지역도서관은 3차원(3D) 프린팅, 로봇공학 등 기술 체험 공간뿐 아니라 스타트업 창업지원센터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공공도서관과 국민 독서에 관한 싱가포르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국민의 전반적인 지력 향상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2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조사에서 싱가포르는 읽기, 수학, 과학 전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만 15세 이상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3년마다 평가하는 것이다. 한국은 같은 기간 부문별로 2~12위에 올랐다.

싱가포르=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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