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 같은 모수개혁을 넘어 국민연금을 ‘신·구연금’으로 분리하는 구조개혁안을 내놨다. 지금까지 쌓인 보험료는 구연금 계정으로 분리하고, 개혁 시점부터 납입한 보험료를 신연금 기금으로 별도 적립해 나가는 투트랙 방식이다.
‘모수개혁’에 치중해온 연금개혁 논의의 지평을 ‘구조개혁’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논의할 만하다. KDI는 모수개혁은 고갈 시기를 얼마간 연장할 뿐 근본 해결책은 못 된다며 신연금의 ‘완전 적립식’ 설계를 제안했다. 완전 적립식은 납부한 보험료와 운용 수익률을 더해 연금을 받는 방식인 만큼 항구적으로 안정적인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또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의 연금을 책임지는 ‘세대 간 불평등’ 문제에 발목 잡힌 연금개혁 논의의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된다.
신·구연금 분리 방안은 장점이 적잖다. 현행 제도 아래에서 지급을 약속한 ‘소득대체율 40%’를 감당하려면 보험료율을 35%까지 올려야 하지만 신연금 아래에선 15.5% 정도면 가능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적게 내고 많이 받는’ 특혜가 누적된 구연금의 적자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마법을 부릴 수는 없다. 구연금에서 발생하는 재정 부족분(미적립 충당금)은 연금개혁이 올해 이뤄져도 609조원, 5년 뒤인 2029년에 단행되면 869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KDI는 막대한 이 재원을 국고에서 지원하자고 제안했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재정도 세금이나 국채 발행이 원천이기 때문에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결국 연금 분리가 ‘조삼모사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식하려면 소득대체율 인하, 수령 연령 연기 등을 감수하는 기성세대의 양보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국책연구기관의 제안을 기초로 기초연금과의 연계, 직역연금과의 통합, 정년 연장 등 다양한 구조개혁 논의가 가속화하기를 기대한다. 국민연금은 1988년 출범 당시부터 지속 불가능한 구조로 설계됐다. 기성세대가 이를 방치하고 누린 결과가 2054년의 고갈 위기다. 개혁 칼자루를 쥔 정치권이 KDI 제안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재정으로 특혜를 정당화하는 포퓰리즘만큼은 경계해야 한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