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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재발견…천장까지 개방된 로비, 휴식 공간이 된 층층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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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연구하고 가르치다 보면 당연하게 사용하던 단어의 원론적인 의미를 찾아볼 때가 많다. 공간, 장소, 구조 등과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이런 용어는 상황이 단어의 사용을 결정하기도 한다. 원론적인 의미가 항상 정확한 어법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중 가장 어려운 용어는 ‘디자인’이다. 강단에 처음 서던 때 ‘디자인이 뭐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전, 책 등의 자료를 뒤져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잔뜩 찾아봤지만, 그럴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디자인이 뭔지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설명하려고 하니 아무것도 모르겠던 그 섬뜩한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영국 런던 디자인뮤지엄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13년 겨울이었다. 현대 디자인과 건축에 큰 영향을 미친 독일의 예술디자인 학교 ‘바우하우스’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 백색의 건물. 그 안엔 디자인의 모든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몹시 부러웠던 감정이 떠오른다.

당시 디자인뮤지엄은 타워브리지 근처 지역에 있었다. 2016년 규모를 더 키워 지금의 위치인 런던의 서쪽, 켄싱턴 하이스트리트에 새롭게 자리 잡았다. 새로운 디자인 뮤지엄은 이전에 영연방 연구소 ‘커먼웰스 인스티튜트’였던 건물. 10년 넘게 사용되지 않던 1960년대 건물을 리노베이션했다.

홀랜드파크 안에 있는 이 건물은 멀리서부터 두 개의 포물선이 교차하는 지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건물의 핵심 디자인인 구리 지붕을 유지한 채 건물의 개조가 진행된 것. 이 구조는 새로운 뮤지엄의 공간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반면 이 오묘한 지붕 밑에 자리한 내부 공간의 구조는 굉장히 단순하다. 지상 3개 층, 지하 2개 층으로 구성된 실내 공간은 지상층 중앙의 거대한 보이드를 각 층에서 복도형으로 둘러싸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그래서 1층 중앙에 서서 한 바퀴 돌면 각층의 각 면에 무엇이 있는지 대략적인 파악이 가능하다. 2층에서는 기획전시가, 3층에서는 상설전시가 열린다. 전시 성격에 따라 전체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2층으로 올라가기 전 중층으로 연결되는 중앙 계단은 단지 이동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장소다. 사람들은 앉은 채로 공간을 조망할 수 있고, 반대로 위층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조망당할 수도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이 한눈에 보이는 심플한 공간이라고 생각할 즈음 반전의 풍경도 펼쳐진다. 계단을 따라 층을 이동하다 보면 시선의 위치에 따라 공간과 전시물이 달라 보이는 경험이 이어진다.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다.


디자인 뮤지엄에 간다면 3층의 상설전시실을 놓치지 마시길. ‘디자이너(Designer)-메이커(Maker)-사용자(User)’라는 주제로 뮤지엄의 소장품 1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시대에 따른 디자인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 전시는 디자인을 둘러싼 주요 이해관계자의 입장에서 디자인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디자이너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이 뮤지엄이 알려준다. 디자인-계획을 실현시키는 제작자와 실제 사용하는 사용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 할 때 디자인도 제 기능을 다 하고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디자인뮤지엄은 1989년, 이제는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의 대명사 ‘콘란숍’으로 유명한 테렌스 콘란 경을 중심으로 설립됐다. “교육, 산업, 상업 및 문화의 각 분야에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서”가 설립 목적이다. 디자인 진흥을 위한 한 사람의 열정이 꾸준하게 전해져 거대하게 피어난 이곳은 디자인을 대하는 관점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역사적 자료를 통해 알려주는 동시에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한 번 방문하고 마는 곳이 아니라 옆에 두고 계속 꺼내 보고 싶은 잘 쓰여진 책 같은 곳이다. 빙글빙글 돌고 오르락내리락 이동하면서 드는 생각. ‘언젠가 또다시 디자인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순간이 오면 이곳이 생각나겠지.’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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