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이 현실화하면서 단순한 숫자 늘리기가 아니라 의사과학자 양성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약·바이오 분야에 의사과학자 인력 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국내에 의사과학자가 태부족이기 때문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의대 재학생 중 의사과학자 희망 비중은 1%에 못 미친다. 소득이 높은 임상의사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KAIST 의과학대학원에서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고 있지만 졸업 후에도 연구를 지속하는 경우는 10%에 그치는 실정이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의사과학자가 제약·바이오산업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 글로벌 상위 10개 제약사 최고과학책임자(CSO)의 70%가 의사과학자다. 창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로버트 랭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의사과학자인 그는 모더나를 비롯 40여 개 바이오기업을 설립해 ‘연쇄창업가’로 불린다. 그는 재산이 약 5조8000억원으로 2021년 포브스 선정 400대 부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의사과학자의 연구가 ‘창업→사업화→의료현장’으로 연계되는 선순환 구조가 있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의사과학자 양성에 적극적이다. 전체 의대생의 3.7%가 의사과학자의 길로 들어서는 미국의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MSTP)은 학위과정만이 아니라 전 주기적 지원을 제공한다. 학위를 받는 동안 연간 2000만원 이상씩 장학금을 주고 전공의·교수가 된 뒤 연구비도 지원한다.
영국은 의사과학자의 충분한 연구시간을 확보하는 데 특화돼 있다. 국립보건연구원(NIHR)의 ‘의학 임상 렉처십(CL)’ 프로그램은 임상의가 연중 절반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최대 4년간 지원한다.
국내에서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열악한 처우 개선을 우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다섯 배가 넘는 의사와 과학자 간 연봉 차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소 25곳의 초임 평균연봉은 지난해 기준 4313만원이다. 반면 전문의 평균 연봉은 2억3690만원이다. 의사로선 선뜻 연구자의 길을 택하기가 어렵고, 연구소와 기업도 의사를 채용하기 부담스러운 요인이 된다.
임상의는 당장 한 명의 환자를 살리지만 의사과학자는 미래 1만 명의 환자를 구할 수 있다. 제임스 윌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는 “한국도 의사와 과학자 간 경계를 허물 필요가 있다”며 “국제무대 경쟁력을 갖추는 세기의 과학자를 배출하려면 의사과학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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