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암으로 힘겹게 항암을 하며 다음 달 수술을 기다라고 있습니다. 전공의 사직으로 일정이 늦춰질까 봐 불안한 마음이 큽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수도권 '빅5' 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소속 전공의 1000명 이상이 20일 오전 6시부터 업무를 중단하는 단체행동에 나서,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의 접수창구는 긴 대기 줄을 형성했으나 외래 진료는 차질 없이 진행되는 모양새였으나 일부 수술 연기 가능성 통보, 응급실 진료 지연 등으로 환자들이 불편을 겪었다.
직장암 항암 치료 목적으로 병원에 방문한 60대 남모 씨는 "3월 중순께 수술이 예정돼있다"며 "원래 오늘 MRI 검사 등 수술 일정을 확정하는 날인데 전공의 파업 소식을 듣고 마음 졸이며 병원에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병원 방문 전 통화로 '외래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되나, 수술 일정은 다소 밀릴 수도 있다'고 전해 들었다"며 "전공의 파업이라 교수님도 확답을 건네기 힘든 상황인 건 알지만, 그래도 혹여 수술을 못 받을까 불안감이 커지는 건 사실"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보호자 대기석에서 만난 70대 김모 씨는 "아내가 오전에 정형외과에서 외래 진료를 보다가 갑자기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조짐이 보였다"며 "교수님이 일단 급한 대로 응급실로 가서 진료를 받아보라고 협진 소견서를 작성해주셨는데 막상 응급실에 가보니 전공의가 부족해 진료가 많이 지연되고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단 기약 없이 기다리는 중"이라고 토로했다.
서울아산병원 수술 연기 사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 16일 한 뇌종양 환자 커뮤니티에서 작성자 A씨는 "2월 27일 수술 예정인데 전공의 사직으로 수술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씁쓸하다"고 전했다.
19일 또 다른 환자 커뮤니티에서는 "27일 아산병원에서 장루복원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는데 한 달 미뤄야 할 것 같다고 연락받았다"며 "전공의 일손이 부족해 위급한 환자 먼저 수술해야 한다며 양해를 구하더라"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578명의 전공의가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아산병원 측도 긴급 조치에 나섰다. 이 병원은 지난주부터 수술 예약 환자 중 일정을 미룰 수 있는 환자 명단을 확보해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20일부터 예정된 수술 중 일부가 연기된 건 사실"이라면서 "유선 연락을 통해 환자에게 수술 연기를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술 연기 건수와 사직한 전공의 인원수는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다만 "응급도와 중증도를 고려해 긴급한 수술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환자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복지부는 전날 오후 11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이들 병원의 소속 전공의 55% 수준인 6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20일 밝혔다. 사직서 제출자의 25% 수준인 1630명은 근무지를 이탈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