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발가벗겨진 사랑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요. 짧고 허망하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게 사랑이죠”
지난달 17일부터 4월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를 연출한 이지영(사진·46)이 작품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두 남녀 케시와 제이미가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이혼하기까지 5년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이다. 케시의 시간은 이별에서 첫 만남으로, 제이미의 시간은 사랑에서 이혼으로 엇갈려 흘러가면서 번갈아 무대에 오르는 독특한 구성으로 진행되는 2인극이다.
이지영 연출가의 꿈에 불을 지핀 뮤지컬이 바로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였다. 2003년 한국에서 초연한 이 작품을 본 그의 마음속에는 ‘나도 뮤지컬을 만드는 톱니바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그 뒤로 연출가의 길을 걸으며 그는 ‘아이다’, ‘마틸다’, ‘고스트’ 등 여러 굵직한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의 국내 협력 연출을 맡았다.
무대 뒤에서 일해온 20년. 이지영 연출은 이번 공연으로 단독 연출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단독 연출 데뷔작을 맡게 된 소감을 묻자 그는 "해외 라이선스 작품들은 오랜 준비 과정을 거쳐 완성된 상태기 때문에 협력 연출의 권한이 제한적"이라며 "단독 연출은 모든 책임을 온전히 져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그만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 연출은 “진심의 순간을 관객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무대에서 빚어지는 감정이 관객들에게 통하게 하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 방법을 항상 고민한다고 한다.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를 무대에 올리면서도 이 연출은 처음 이 작품을 본 날을 계속 떠올렸다. “20년 전 공연을 보고 나왔을 때 먹먹한 기분이 내 가슴을 옥죄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경험했던 그 감정을 지금 관객들도 느껴질까 걱정돼 공연이 시작할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연출은 ‘사랑이란 무엇일까’는 질문을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두 배우가 엇갈려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회전 무대를 고안해낸 것도 이러한 고민의 결과였다. 그는 “사랑하는 연인도 결국 각자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명이 동시에 다른 심리를 묘사할 각자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결혼 장면에 대해서 그는 “비극으로 끝날 것을 알기에 더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했다. 관객들이 두 주인공이 이별한 모습을 이미 목격했기 때문에 더 간절한 마음으로 그 짧은 순간만큼은 행복하길 바라며 지켜보게 된다는 뜻이다.
이지영 연출은 “영원을 약속하지만, 한순간에 아주 사소한 이유로 무너지는 게 사랑”이라며 “사랑의 순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찰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망하고 쓸쓸한 ‘발가벗겨진 사랑’을 덤덤하게 보여주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그는 앞으로도 ‘진심의 순간’을 전하는 작품 만들겠다고 했다.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파고드는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를 준비하면서 사랑의 본질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어요. 배우들, 스태프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고요. 앞으로도 이렇게 사람의 마음속을 현미경으로 보듯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공연 리뷰) 결말이 정해진 사랑은 이별보다 슬프다…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