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가 아닌 ‘권고사직’이었다. 회사 입장에서야 숱한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출근할 곳을 잃는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결정이고, 또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인만큼 고용과 해고가 잦은 스타트업에선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퇴사와 동시에 긴 5월의 연휴가 찾아왔다. 그리고 동시에 결혼 1년 반 만에 임신을 하게 됐다. 그 사이 잡혀 있던 면접들이 있었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상태에서 보는 면접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임신은 잠깐 나를 쉬어가게 만들기 위한 커리어 고민의 탈출구로 여기기로 했다.
그것도 잠시 ‘이렇게 쉬다가 정말 영원히 쉬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이 덮쳤다. SNS를 가득 채운 미혼 친구들의 승진 소식, 마음에 담아둔 그 회사가 추가 투자를 유치하고 더 성장했다는 뉴스들이 나를 힘겹게 했다. 나는 주저 앉았는데 모두가 달리는 모습으로만 보였다. 아이를 가졌다는 행복만큼이나 우울도 함께 찾아왔다. 나만 제자리에 있으면 안된다는 조바심도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를 재운 뒤 드는 생각들과 앞으로 하고 싶은 것. 그게 이뤄지지 않을지라도 벽에 대고 말하는 시간들일지라도. 그러다 문득 어차피 이렇게 방구석에서 글 쓰며 병행하는 육아를 굳이 한국이 아니어도 될 것 같았다. 그 생각의 끝에 어느샌가 발리행 비행기 티켓이 내 손에 쥐여져 있었다.
한 달 간의 발리 생활은 우울했던 나를 다시 살아나게 했다. 그 기분을 벗삼아 밤마다 한두 줄씩, 또는 한 페이지씩 발리에서의 생활을 담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사람이 모이고, 정보를 묻고, 본인도 떠나리라 용기를 얻는 이른바 경단녀 엄마들을 알게 되었다.
꼬박 한 달을 보내면서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자신감, 육아는 아주 멋지고 대단한 일이면서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에 그 짬을 내서라도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뭐라도 써내려 간 나의 끈기를 칭찬했다. 몇개의 글이 챙겨준 용기를 벗삼아 구직 사이트를 보기 시작했다. 대단히 멋지고 화려한 회사, 대기업에서는 어차피 필터링 될 것이란 걱정도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 보다는 ‘내가 할 줄 아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건 ‘스타트업 PR 에이전시'였다. 몇 장의 이력서를 적어냈고 면접을 보러 들어간 사무실은 소담한 단독주택이었다. ‘왠지 이 사무실에서 일하면 마음이 참 편할 것 같다’ 란 느낌을 받았다. 인상 좋은 팀원들, 무엇보다 워킹맘이 절반이라던 이야기에서 안도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며칠 뒤 회사에서는 바로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러브콜을 보내왔다. 하지만 막상 러브콜을 받고 보니 해결하지 못한 산더미 같은 숙제들이 생각났다. 어린이집 등하원 도우미 구인과 같은 현실 숙제 앞에 무너졌다. 결국 내게 주어진 기회는 거절했다. 기회는 아쉽게 날아갔지만 그 덕에 자신감은 더욱 커졌다.
그래서 다시 이력서를 넣기보단 발리에서의 생활을 조금 더 기록해 두기로 했다. 아무도 안 보더라도, 누군가는 봐줄 거란 기대를 조금 안고. 아무도 안 볼 것 같던 글은 누군가 나에 대해 미래의 동료로서 상상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여지를 남겨뒀다. 상대방도 ‘이런 생각의, 이런 궤적을 밟았던 사람이구나'라고 예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현직장에 입사했을 때도 ‘인혜님 그 글 너무 좋았어요' 라고 말하는 분이 있었으니 나름 성공한 셈이다.
이듬해 1월의 어느 날, 그 PR에이전시 대표님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혹시, 어린이집이 결정 되었다면 함께할 생각 없어요?”
그 무렵 우연찮게도 어린이집 순번이 가까이 다가왔고, 너무나 좋은 등하원도우미 이모님도 만나게 됐다. 그렇게 끊길 것 같던 내 커리어가 다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경단녀에서 재취업을 했다는 건 대단한 이직의 기술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점프를 위해선 도약을 위해 움츠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 때 움츠려만 있지 않고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걸 쌓아둬야 한다. 벽에 대고 말해도 언젠가 기회가 온다는 마음으로. 또 돌이켜 보면, 임신과 출산을 통해 얻은 휴식 기간이 나에게는 가치 있는 선물이었다. 다시 받아준 회사의 결정에 감사하며 이전의 업무 경험과 끈기를 바탕으로 다시 커리어를 쌓아가기로 결심했다.
이직은 새로운 시작이자 미지의 도전이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을 보여주고, 감사한 마음으로 주어진 일을 하는 것. 직장인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하기 싫은 일이 나에게 닥쳤을 때, 다시 일하고 싶어했던 과거의 나를 복기해본다.
정인혜 님은 ‘88 올림픽 봤겠네’의 단골인 88년생으로, IT,스타트업 이야기를 대신 고민하고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업으로 삼은지 12년차. 현재 한 투자사에서 제일 투자답지 않은 일을 맡은 그녀는 글보다 말을 선호하지만 기억은 기록이 되기에 가끔 글을 쓰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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