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짓기 위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과정에서 시공사가 미분양 물건을 모두 사들이겠다는 조건을 내건 사례가 나왔다. 증권업계에선 이 같은 숨은 리스크가 ‘우발부채’로 명확히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5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에 들어서는 ‘송도자이풍경채 그라노블’(조감도)의 시공사는 약 6000억원의 PF 조달을 진행 중이다. 최근 건설사가 금융업계에 돌린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PF 대출 조건으로 책임준공과 ‘미분양 시 대물인수’를 적시했다. 미분양 물건이 있을 때 시공사 컨소시엄이 대출 만기일 이전에 해당 물건을 모두 인수하겠다는 것이다.
송도국제도시 11공구에 들어서는 이 단지는 이달 분양을 예정하고 있다. 지하 2층~지상 최고 47층, 23개 동(아파트 21개 동, 오피스텔 2개 동), 총 3270가구에 달한다.
시장에선 미분양이 현실화하면 대물인수 규모가 최대 2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약 1조원의 공사비는 상계 처리하더라도 추가로 조단위 재무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분양가는 전용면적 84㎡ 기준 8억원대 초·중반으로 거론된다. 분양수익금 배분 우선순위가 시행사에 유리한 구조인 점도 건설사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공사 관계자는 “대물인수 조건은 시행사인 송도국제화복합단지개발과 2021년 사업협약을 맺을 당시부터 있던 조항으로 PF를 위해 무리하게 제시한 게 아니다”며 “송도 11공구 미래 가치와 분양가 등을 고려했을 때 미분양 우려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우발부채 분류 기준과 공시 요건 등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일반적으로 대물인수는 공사비 등을 못 받을 때 채무에 갈음해 아파트 등을 인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받아야 할 돈 대신 물건을 받는 개념이어서 우발부채로 잡지 않는다. 회계기준원 관계자는 “어떤 용어를 썼든지 간에 의무나 책임이 발생하는 조항이라면 책임분양처럼 우발부채로 인식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건설사들이 2023년 사업 보고서를 제출하는 대로 장기 공사 수익과 우발부채 부문에서 누락된 공시는 없는지 등을 들여다볼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급보증 외에 채무인수 약정, 자금보충 약정 등에 대한 공시가 누락되지 않았는지, 기존 우발부채 규모 변화 등이 제때 반영됐는지를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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