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최근 주력 수출 산업으로 떠오른 방산을 신성장·원천기술 분야로 신설하고, 국가전략기술 범위에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반도체·디스플레이·수소 분야 세부 기술을 추가해 연구개발(R&D) 투자 시 세금을 깎아주기로 했다. 세법 개정 후속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과감하고 속도감 있는 지원을 통한 미래 첨단 산업 육성 및 기업 투자 촉진”을 약속한 뒤 정부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모습이다.
첨단 전략산업 분야에서 한국 경쟁력이 퇴보하고 있다는 경고음이 잇따르는 상황이어서 반갑기도 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미래차·바이오·로봇 등 한국 6대 첨단 전략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18년 8.4%에서 2022년 6.5%로 쪼그라들었다. 점유율 순위는 2018년 중국 다음 2위에서 4년 새 5위로 추락했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가 공개한 ‘글로벌 핵심 기술 경쟁 현황’에서도 이런 현실이 드러났다. 한국은 미래 핵심 기술 64개 가운데 단 한 분야에서도 1위에 오르지 못했다. 고성능 컴퓨터와 전기 배터리 분야에서 3위에 오른 게 최고다.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은 단거리 경주처럼 시간 싸움이다. 어느 나라가 더 빨리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느냐, 이를 위해 정부가 얼마나 많은 규제를 풀고 지원을 쏟아붓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미국이 전기자동차 등 자국 제조업 지원을 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과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주였다. 반면 한국 반도체 기업의 시설투자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반도체 특별법’(K칩스법)이 2022년 8월 발의 후 통과되기까지 반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그런데도 국회에는 아직 전략산업 관련법이 첩첩이 쌓여 표류 중이다. 전기차와 수소차 등 미래 자동차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미래자동차 육성 특별법’은 물론 당장 K방산 수출을 가로막고 있는 수출입은행법 개정조차 감감무소식이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바뀌고 세계 각국은 이에 맞춰 속도전인데, 우리 국회만 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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