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 있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에는 기부금이 매년 1조원씩 들어온다. 기부금으로 박사학위 대학원생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로 월 5000달러를 지원하며, 다양한 복지제도를 운용한다. 30여 개의 대학 건물은 각각 기부자의 이름으로 불린다. 최근 1억달러(약 1300억원)를 기부받아 신경질환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세계적인 의과학자를 초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까지 칼텍의 노벨상 수상자는 40명에 달하고, 1~2년마다 한 명씩 늘어나고 있다.
기초의학연구 발전에는 막대한 재원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에서 지원되는 연구비는 시약과 재료비, 인건비 등으로 사용된다. 연구시설과 장비는 학교에서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10년간 동결된 등록금과 낮은 의료수익으로는 연구시설 투자가 어렵다.
부족한 기초의학연구 투자를 위한 대안은 기부금이다. 미국의 상위권 대학은 기부금으로 연구력이 우수한 교수를 초빙해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필자가 10년간 봉직했던 시카고 노스웨스턴대 의대는 내분비내과 과장의 직책명을 찰스 케터링 교수, 외과 주임교수 직책명을 로열 & 에디스 데이비스 교수라고 한다. 학장 역시 루이스 랜스버그 딘이라고 한다. 모두 기부자의 이름을 딴 명칭이다. 2억달러를 기부한 로버트 H 루리의 이름으로 12층 규모의 의학연구소도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실험 동물 2만 마리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부동산 부호 루벤 파인버그 가문에서 5억달러를 기부하자 대학은 명칭을 의대에서 파인버그 의대로 바꿨다.
우리나라도 대학 연구발전기부금이 늘어나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대학은 기부자의 뜻에 맞도록 기부금을 잘 운영해야 한다. 기부 후 세금 문제로 기부를 철회하는 경우도 있어 세제 혜택을 보완해야 한다. 유산과 부동산, 증권, 암호화폐 등 다양한 형태의 기부금에 대한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기부금을 재원으로 한 기금 운용도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이런 시스템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하버드대는 1974년 ‘하버드 매니지먼트 컴퍼니’를 세워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하버드대 전체 예산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이 기금 운영수익이다. 현재 하버드대가 70조원, 예일대 55조원, 스탠퍼드대 50조원, 매사추세츠공대(MIT)가 35조원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과대학들은 영국 평가기관 THE의 세계대학평가에서 50위권 안에 들 만큼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낮은 의료수익, 연구비 제도 미비로 세계 대학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139년 전 미국의 사업가 L H 세브란스의 기부로 연세대 의과대학의 전신인 세브란스의과대학이 설립됐듯, 우리나라에도 기부자의 이름이 붙은 의과대학이 다시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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