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와 기아가 미국에서 전기차 가격을 최대 7500달러 깎아주기로 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미국에서 생산한 전기차에 대해서만 주는 보조금과 같은 규모다. IRA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대차·기아 구매자에게 회사 차원에서 ‘보조금’을 주기로 한 것이다.
14일 현대차 미국법인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 3일부터 미국에서 2024년형 아이오닉 5·6와 코나 일렉트릭을 구매하는 개인 소비자에게 7500달러의 현금 보너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상 가격 할인이다. 기간은 이달 31일까지다. 상업용 차에만 적용됐던 인센티브를 개인이 구입하는 전기차로 확대한 것이다.
기아 미국법인도 이달 3일부터 오는 3월 4일까지 2023·2024년형 EV6와 니로 EV를 구매하는 개인 소비자에게 모델별로 3000~7500달러의 캐시백을 제공한다. EV6 2023년형을 구매하면 7500달러, 2024년형은 5000달러를 돌려받을 수 있다.
현금 보너스를 적용하면 현대차 아이오닉 6 SE의 권장소비자가격(MSRP)은 4만2450달러에서 3만4950달러(약 4596만원)로 낮아진다. 새해부터 IRA 보조금 명단에서 제외된 테슬라 모델 3 후륜구동(최저 3만5990달러)보다 싸졌다. 동급 전기 세단 가운데 최저 수준이다. 코나 일렉트릭 가격은 2만5175달러(3310만원)까지 떨어진다.
현지 한 자동차 딜러는 “현대차·기아 전기차는 IRA 수혜 대상이 아니지만 제조사가 직접 보조금 전액(7500달러)을 받는 것과 동일한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라며 “세액 공제 방식이던 IRA 보조금이 올해부터 구매 시점에 바로 현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바뀌면서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이 더 중요해졌다”고 했다. 새해부터 IRA 보조금 명단에서 제외된 제너럴모터스(GM)도 자사 전기차에 자체적으로 7500달러 할인을 적용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는 IRA 규정에 따라 북미에서 생산된 특정 조건의 전기차에만 최대 7500달러 보조금을 주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전기차 공장이 아직 완공되지 않은 탓에 ‘메이드 인 코리아’ 차량을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다. 그나마 작년까진 IRA와 무관하게 전기차 보조금을 주는 법인 대상 리스·렌터카 시장을 공략해 성과를 냈지만 수익성과 판매량 측면에서 한계가 뚜렷했다. 파격 할인으로 승부수를 던진 이유다. 지난해 포드를 제치고 미국 전기차 시장 2위에 오른 현대차그룹은 공격적 마케팅으로 수요 둔화를 돌파하고 상승세를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올해 전기차 가격 전쟁은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폭스바겐은 지난주부터 유럽 시장에서 전기차 ID 시리즈 출고가를 최대 30%가량 인하했다. 프랑스에선 5만1000유로였던 ID.4 가격을 4만3990유로(약 6336만원)로, 노르웨이에선 50만크로네였던 ID.3 가격을 35만8000크로네(약 4575만원)로 낮췄다. “(테슬라가 일으킨) 가격 전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던 기존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테슬라도 지난 12일 중국에서 모델 3·Y 가격을 또 낮췄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