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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슈 찬반토론] 첨단기업의 해외 합작투자, 사전 승인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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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핵심기술 보유 기업의 해외 합병과 합작투자 때 정부 사전 승인을 받게 하도록 산업기술보호법(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등 해외 사업이 많은 대형 수출기업 다수에 해당하는 중요한 법안이다 보니 산업계의 관심이 크다. 이 법이 던지는 쟁점은 분명하다. 치열해지는 기술경쟁 시대에 무리를 해서라도 한국의 전략적 핵심기술을 보호할 것인가, 규제 혁파로 외국인투자를 확대하고 국내 글로벌 대기업들이 수출에도 적극 나서게 지원할 때인가, 서로 다른 두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이 법이 있다. 핵심기술을 지키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기업들은 새로운 규제라고 반대한다. 반면 정부는 보조금까지 들어간 첨단기술을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승인제는 필요한가.
[찬성] 정부 보조금 들어간 핵심기술 지켜야미국 IRA법 등 기술보호는 글로벌 추세
해외 기업이 자본투자나 기술투자 형식으로 한국 기업이 가진 첨단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계기가 갈수록 늘어난다. 반대의 경우도 물론 많다. 문제는 법적·행정적으로 관리 대상인 국가 핵심기술의 국외 유출 가능성이다. 명백한 범법 행위인 기술의 불법 유출도 관련 법에 따라 막아야겠지만 합법적 투자 형식으로 유출되는 기술도 통제할 필요가 있다. 국가 핵심기술은 공기업이나 국책 연구원도 확보하고 있지만, 자율로 움직이는 민간 기업에도 많다. 정부 예산에서 나가는 국가 보조금까지 투입한 기술의 유출은 막아야 한다. 그래서 사전 승인을 받으라는 것이다.

기술 보호 및 관련 규제의 강화는 근래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는 국제적 추세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다. 중국을 의식한 미국 정부가 이 법을 만들어 반도체 공정 등 미국의 첨단 기술과 장비 이전을 막고 있다. 미국은 자국으로의 수출 및 투자 기업에 대해서는 제3국 국적이라도 다양한 규제를 한다. 중국도 경제안보를 이유로 외국인 투자안보심사 제도를 운용한다. 이런 추세에 우리도 발맞춰야 한다. 국가의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기술에 대한 기업의 책임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는 데 기업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사전승인제도는 인가를 해주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관련 과정, 즉 절차를 강화하겠다는 정도다. 최근의 기술유출 사례를 보면 상황이 심각하다. 한국의 전략 산업이자 최대 수출 산업인 반도체 공장의 설계도가 통째로 유출됐다가 적발된 사례가 있다. 잠수함 기술이 유출된 일도 있었다.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수출형 잠수함의 경우 무려 2000쪽 분량의 설계 도면이 대만에 돌아다녔는데도 해당 기업이나 한국의 보안 당국은 모르고 있었다. 기술 유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 단적인 예다. 이제라도 국가적 전략기술이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다해야 한다.
[반대] 기업 몰래 추진된 갑질 규제·군림 행정…국제 경쟁력만 떨어뜨릴 수도
산업기술의 불법 유출에 대한 처벌 강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합병과 합작투자에 대해 강제로 사전 승인을 받으라는 것은 첨단산업에 대한 또 하나의 규제다. 해외 사업이 많은 대형 수출기업 대부분에 해당할 이런 중요한 법안이 국회의 해당 상임위원회를 통과하기까지 공청회 등 제대로 된 산업계 의견 수렴도 없었다는 사실부터가 심각한 문제다. 정부와 국회가 해당 산업계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법안을 은밀히 추진해온 것이다.

문제의 신설 규제 조항은 “국가 핵심기술을 보유한 대상 기관과 외국인이 해외 인수·합병, 합작투자 등을 진행하려는 경우 미리 공동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다. 신고 정도가 아니라 ‘의무적 사전 승인’을 받고 해외 사업을 추진하라는 강제 조치다. 반도체·배터리·바이오·모빌리티 등을 비롯한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기존의 상식 틀을 다 뛰어넘을 정도로 합종연횡의 공동투자가 이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기업이 제대로 투자에 나서기 어렵게 만드는 규제다.

IRA를 보면 미국도 이런 보호주의 정책을 펴기는 한다. 하지만 한국은 국제적으로 미국처럼 ‘갑’이 아니다. 글로벌 대기업이 일본·유럽·대만 등지의 대체 투자 파트너가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에 온갖 서류를 다 내고 기술을 노출하면서까지 한국 기업과 공동투자에 기꺼이 나설 이유가 있을까. 이 법이 외국 기업의 한국 내 투자 및 한국 기업과의 합작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우려다. 오죽하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 단계에서 야당(더불어민주당) 의원까지 “기업의 생명인 첨단기술을 행정기관이 틀어쥐고 조정하겠다는 것이 지금 윤석열 정부의 대한민국 구조와 맞나”라며 드러내놓고 반대를 했다. 국가 핵심기술 여부를 정부가 판단해 관련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행정권력 남용의 소지가 있다. 규제투성이 속에서 첨단산업 발전은 어렵다.
√ 생각하기 - 테슬라·애플이 기술노출 무릅쓰며 한국에 투자할까
규제는 늘 그럴듯한 명분에서 시작된다. 법과 행정에서 ‘디테일의 악마’를 경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체적인 취지나 총론은 좋지만 각론의 한 구석(특정 조항)에 악마처럼 가시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이 개정법대로 되면 해외에 공장을 짓고 필요 물자를 옮길 때 외국 파트너 기업도 공동으로 한국 정부에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테슬라나 애플 같은 기업이 한국만 바라보며 군말 없이 이 조건에 응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기존에 있는 산업기술보호위원회 등 사전심의 절차를 내실화하고, 불법 기술 유출엔 사후에라도 강력 대응하는 게 현실적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부 논리대로 “승인을 안 해주겠다는 게 아니라, 단지 절차상의 문제”라면 오히려 더 문제다. 그런 ‘절차’에서 갑질 행정, 군림 행정이 비롯되곤 하는 것이 한국 행정의 취약점이다. 해당 상임위에서는 통과됐으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일단 제동이 걸린 게 그나마 다행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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