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를 담당하는 임직원 중 일부가 직무 수행 도중 무분별한 사익추구 행위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부동산PF 과정 중 알게 된 사업 관련 정보를 활용해 많게는 500억원 가량 부당이득을 취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회사가 돈 갚아줄 것' 정보 악용한 사적 대출로 수십억 꿀꺽
10일 금융감독원은 다올투자증권, 메리츠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현대차증권(이상 가나다순) 등 5개 증권사에 대해 부동산 PF 기획검사를 벌인 결과 임직원 사익추구 행위와 증권사 내부통제 취약 사례 등을 다수 발각했다고 발표했다. 금감원은 작년 10월 23일부터 같은해 12월 29일까지 이들 증권사에 대해 기획검사를 벌였다. A증권사의 한 임원은 토지계약금대출 취급과 브릿지론, 본PF 등 업무 과정에서 얻은 사업장 개발 진행 정보를 활용해 500억원가량 부당이득을 얻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임원은 2020~2021년 본인이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법인을 통해 개발사업 시행사의 최대주주가 발행한 전환사채(CB)를 수천만원에 사들인 뒤 이 시행사에 2000억원 규모 본PF를 주선해줬다. 그는 이후 대출금을 받아간 용역사에 이 CB를 약 500억원에 팔아넘겼다.
이 임원은 또 직무상 얻은 정보를 통해 수익성과 안정성이 높은 사업장을 골라 개인적으로 돈을 빌려준 뒤 높은 이자를 받아내기도 했다. 자신이 근무하는 A증권사가 향후 대주단에 참여할 것이 확정된 사업장을 주로 노렸다. 시행사가 A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자신에게 빌린 돈을 상환할 수 있을 것으로 봐서다.
그는 본인 관련 법인 등을 통해 사업장 시행사들에 약 700억원을 사적으로 빌려준 뒤 수수료와 이자 등 명목으로 40억원상당을 받아냈다. 일부에 대해선 이자제한법상 최고금리인 연 20% 이상을 받기도 했다.
개발·임차 계획 비공개 정보로 100억원 차익
증권사 부동산PF 담당 직원이 비공개 정보를 활용해 직접 부동산을 사들인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B증권사의 한 직원은 기존 PF 주선 과정에서 시행사가 사업 부지 인근에 추가 개발을 추진하다는 비공개 정보를 파악한 뒤 동료·지인과 함께 투자조합을 결성해 신규사업 시행사에 약 10억원을 지분투자했다. 이 직원은 20억원가량 부당이득 수취를 하려다 발각됐다. C증권사의 임원은 업무 과정에서 부동산임대 PF 정보를 알아내 자신의 가족법인을 통해 900억원 상당 부동산 11건을 취득하거나 임대했다. 이중 3건은 처분해 100억원 상당의 차익을 내기도 했다.
이 임원이 처분한 세 건 중 한 건은 부동산 임차인인 한 상장사에게 팔렸다. 이 상장사는 CB발행을 통해 매수자금을 조달했는데, 이 임원의 부하직원이 CB 인수·주선업무를 담당해 C증권사가 고유자금으로 해당 CB 일부를 인수했다.
'대출 받은 돈, 계획보다 네 배 더 쓰겠다'해도 확인 안해
증권사의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례도 여럿 적발됐다. C증권사는 부동산PF 대출을 심사·승인한 건에 대해 영업부가 차주를 임의로 변경했는데도 심사부가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 증권사는 채무보증 의무 이행을 회피하기 위해 사업장간 유동화 특수목적법인(SPC) 자금을 임의대차하기도 했다. 한 사업장의 자금 부족을 다른 사업장 자금으로 메웠다는 얘기다.
시행사가 최초 승인 자금사용계획에 비해 PM 용역비를 네 배 늘렸는데도 용역계약서를 확인하지 않은 사례도 발각됐다.
증권사에 행정제재 절차도 예정…CEO 제재 가능성도
금감원은 이들 사례에 대해 제재심의위원회 등을 열어 해당 증권사 행정제재를 추진할 예정이다. 각 사 이사회나 감사위원회 등과도 직접 소통해 개선을 요구한다. 내부통제 제도 미비는 증권사의 최고경영자(CEO) 제재로도 이어질 수 있다. 각 증권사 CEO에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가 있어서다. 금감원은 사안 관련 개인에 대해선 검찰에 이미 통보를 한 상태다. 다른 증권사에 대해서도 추가 검사를 이어갈 전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비슷한 행위가 더 나올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며 "부동산PF 관련 불법적 관행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