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JP모건 컨퍼러스의 첫 기술이전 주인공은 제약·바이오 회사가 아닌 인공지능(AI) 기업이었습니다. 그것도 만든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갓 태어난 기업 '아이소모픽 랩스'가 말이죠. 신생기업이기는 하지만 성장의 속도와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든 놀라운 잠재력을 지닌 아이소모픽 랩스의 대형 기술이전 계약 소식이 제약·바이오산업에 던지는 함의를 한 번쯤은 짚어봐야 합니다.
미국의 알파벳은 딥마인드 등 자회사를 통해 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생명공학 기업 칼리코는 장수와 수명 연장에 대해 기초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베릴리는 질병 예방을, 이세돌과의 대국으로 유명세를 탄 알파고를 개발한 업체죠, 딥마인드는 의료 인공지능(AI)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알파고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CEO) 인지신경과학박사 데미스 하사비스는 이세돌과의 대국으로 AI의 상업화 가능성을 확인한 후 돈을 벌기 위한 공략 산업으로 바이오를 선정합니다. 바이오는 시장이 크고 AI로 공략할 목표가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데미스 하사비스는 바이오 업계를 공략할 도구로 구조생물학 즉,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분석하는 'AI 알파폴드'(AlphaFold)를 개발하기로 합니다. 단백질과 같은 생체고분자의 입체구조를 고해상도로 연구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를 구조생물학이라고 하는데요. 202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가 승인한 53개의 신약물질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21개가 단백질의 구조를 활용해 개발됐습니다.
항체는 항원 단백질과 결합해서 질병을 치료하는데 항원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알 수 있다면 보다 결합력이 강화된 신약 물질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단백질의 구조가 5주 만에 밝혀져 백신 개발을 앞당기게 됐던 것도 단백질 구조예측 AI 기술이 기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는 AI 알파폴드1을 개발한 데미스 하사비스는 단백질 구조예측 대회인 CASP13(2018년)에 참가해 자유모델링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실력을 증명합니다. 이어 성능이 개선된 알파폴드2로 CASP14에 참가, 2등과 큰 격차로 또 다시 우승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끌게 됩니다. 오픈 소스 문화를 전통으로 생각하는 AI업계는 알파폴드의 논문 공개와 단백질 구조 데이터베이스 공개를 지속적으로 요구했습니다. 딥마인드는 선뜻 결정하지 못하다가 결국 알파폴드1의 소스코드와 데이터베이스를 공개하게 됩니다.
이번 딥마인드의 정보 공개에 불편함을 느낀 알파벳은 2021년 상업화 전문기업 '아이소모픽 랩스'를 설립하고 데미스 하사비스가 CEO를 겸임하게 됩니다. 이후 알파폴드2의 단백질 3차원 구조 예측 학습 속도를 끌어올립니다.
2021년 1억3000만개의 단백질 목록을 확장했습니다. 또 작년 10월 31일에는 단백질 데이터 은행(PDB)에 있는 약 2억1400만개의 단백질 구조를 대부분 해석하고 분자 구조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모든 분자 구조에 대해 예측할 수 있게 됐다고 발표합니다. 구조 예측의 범위가 단백질뿐만 아니라 저분자, 핵산까지 분석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AI가 암 표적연구, 항암물질, 면역질환 연구 등에 활용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AI의 발전 속도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아이소모픽 랩스는 JP모건 컨퍼런스 첫날 일라이 릴리와 17억달러(약 2조2000억원), 노바티스와 12억달러(약 1조5700억원)의 신약 물질 개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반환 의무가 없는 선급금만 8250만달러(약 1085억원)에 달합니다. 설립 후 단 2년 만에 거둔 성과처럼 보이지만 그 준비 기간이 길고 치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라이 릴리와 노바티스 같은 빅파마가 원화 4조원이 넘는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은 알파폴드2의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측 범위가 단백질뿐만 아니라 저분자, 핵산을 포함하고 있어 향후 다양한 분야의 신약 물질 개발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과거 몇 년간 성장해 온 알파폴드의 학습 속도를 볼 때 3년 후 알파폴드 능력은 두려울 정도입니다. 빅파마로부터 대규모의 자금이 유입되면서 알파폴드의 성장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기존 제약·바이오 산업에 장애물로 여겨지고 있는 신약 개발 기간과 비용 측면에서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제약·바이오 산업의 판도를 바꿀 난데없는 메기의 출현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해진 임플바이오리서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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